떨어진 돌을 주워 돌탑을 쌓는다

by두근거림

상담자에게는 바카라임이 따른다. 공공 기관에서 일하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시간을 비용으로 받는다. 내담자는 한 시간 상담을 위해 오가는 수고를 감수한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순간과 마주한다.


상담에서 중압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상담 회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내담자가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이지 않을 때다. 그럴 때면 내담자와 합의된 소통 방식을 깨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상담자는 자신의 유아적 소망을 상담으로 충족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최근, 바카라에서 인상 깊게 본 구절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어린 시절 품었던 소망이 있다. 나의 경우 엄마를 회복시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자애로움을 간직한 엄마가 나를 지켜봐 주기를 원했고, 뒤돌아서면 먼발치에서 웃으며 한결 같이 기다려 주었으면 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 노곤히 잠에 빠진 아이가 떠오른다. 엄마의 미소는 봄바람에 살랑이는 물결과 같고,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와 같다. 창가로 들이치는 햇볕은 너른 들판에 핀 개나리와 진달래를, 허공을 떠다니는 먼지는 꽃가루를 연상시킨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새순이 돋듯, 꽃이 피듯, 아이는 잠잠히 빛나고 있다'


엄마를 회복시키고 싶었던 마음은,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보면 돕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진다. 괜찮아진 상대가 줄 수 있는 안정감을 기대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고통이 지속될수록, 불편해 보일수록 나는 해결하려고 한다. 관계에서 받는 긴장감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대처 방식이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언어를 가정하거나 해석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언어가 가지는 의미는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경험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유아적 소망은 내담자가 부여한 언어의 고유한 의미를 왜곡하게 한다.


나는 엄마를 회복시킬 수 없었다. 누군가를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대상은 나 자신 뿐이었다. 다만, 힘들어하는 엄마 곁에 머무를 수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만큼, 듣고 싶은 만큼 귀담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엄마를 바꿀 수 있는 대상은 엄마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부분은 상담에서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 컨디션에 따라 내담자의 언어에 반응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상담실로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가 접촉하는 일상의 순간들에서 소망이 잘 다뤄지지 않았을 때, 내담자가 원한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필요해 보이지도 않은 반응을 선택하기도 한다.


오늘도 내담자와 눈을 맞췄다.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을 견뎠다. 다가오는 느낌이나 감각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부분인지 내담자의 부분인지 구분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안간힘을 썼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상담을 하고 말았다.


갈피를 못 잡고, 말이 장황해지고,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마주했다. 내담자의 언어를 가정하려고 하고, 해석하려는 내가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 흐트러진 돌탑의 한 구석을 채운다.


이번에 쌓은 돌이 필요한 자리로 정교하게 맞아 들어가기를, 주변으로 쌓는 돌들과 조화를 이루어가기를, 위로 쌓아갈 돌의 튼튼한 배경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반성하며, 숙고할 따름이다.


andybaron-stone-tower-8301153.jpgImage by Andy Baron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내게 중요한 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