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 괜찮은 시간, 괜찮은 어떤 것들

by콩두부
종이에 수채, 마카. 2026


건물에서 나왔을 때는 아직은 환한 저녁이었다. 매미소리는 들려왔지만 어딘가 쇠잔해진 울음소리였다.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다 집을 찾아 떠나는 철새처럼 바삐 움직였다. J는 동료의 저녁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하고 늘 타던 지하철 대신 걸어가기를 택했다. 건물 사이를 부딪히며 인도 위로 쏟아져 내려오은 바람이 꼭 파도 같이 느껴졌다. 얇은 니트 넥타이가 바람에 마구 휘날려서 그는 재킷의 단추를 잠그기로 했다. 두 번째 단추까지만 잠근 후 그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지나 집으로 빙 둘러가는 좁고 복잡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저녁장사를 시작하는 작은 술집들 안에서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늘 듣던 노래도 듣지 않은 채 터벅거리며 골목길을 걸었다. 조금 천천히 걸었지만 어느새 붉은 벽돌로 지어진 자신의 낡은 아파트에 다다랐다. 몇몇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의 집은 어두웠다. 창문도 열어둔 채 나온 탓에 창문의 커튼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한 바퀴를 더 걷기로 했다. 붉은 벽돌집을 등지고 걸어왔던 골목길의 옆 길로 들어섰다. 환했던 하늘이 진한 소다색으로 변하고 있었고 누군가 꾸벅 졸다가 일어난 듯이 곧 가로등이 켜졌다.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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