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요영
웃으며 작별인사를 나눈 후 나는 그녀를 본 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거의 20년도 훨씬 넘는 세월 동안 그녀의 모습은 액자 속 그림처럼 머릿속 어느 곳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내 아버지의 사촌동생이고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 살았었다. 그녀의 긴 반곱슬 머리는 부스스했지만 향긋한 모링가향이 났었다. 또 늘 회색 옷을 입고 다녔다. [요영] 이 그녀의 이름이었고 성은 나와 같은 [전]씨였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때 이른 사춘기를 보내던 10살 무렵이었다. 10살에 무슨 사춘기냐 싶겠지만 모두가 겪을 그때에 온다는 사춘기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아니 오긴 했다. 그게 10살 무렵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각설하고 그때에 만난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수줍게 인사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여느 다른 어른들처럼 시끄럽지도, 머리를 마구 쓰다듬지도 않았다. 늘 수줍게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정도였다. 한 번은 내가 여름방학 숙제를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 옆에서 바카라을 읽고 있었는데 혹여나 내게 방해가 될까 종이도 조심스럽게 넘겨 읽곤 했다. 또 부모님을 대신해서 아주 가끔 나를 돌봐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마들렌을 만들어 주었다.
낯을 많이 가리던 내가 그녀와 친해진 것도 마들렌 덕분이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손이 만드는 보드랍고 노란 마들렌은 외로운 사춘기 꼬마였던 나에게 따뜻한 품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10번 정도 보았을 무렵 그제야 그녀에게 '요영언니'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도 내 동그스름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가족은 종종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아빠의 고모, 고모부)과 식사를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친해진 그녀의 앞자리에 앉아 신나게 떠들어댔다. 외동이었던 나는 그녀가 내 친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함께 나누는 작은 대화들이 그 당시 학교 종례시간보다도 더 기다려졌다.
그리고 어느 날, 역대급 장마가 시작된다는 뉴스 예보와 함께 아빠의 고모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또 며칠 뒤 고모부가 돌아가셨다. 그렇게 그녀는 장마 한가운데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장례가 다 끝난 뒤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오늘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전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