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by꾸록

어릴 때부터 나는 뭔가를 곧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시키는 일은 웬만하면 평균 이상으로 해냈고,

주변에서는 늘 "너는 이거 잘하니까"라는 말로

내 다음 선택을 정해주곤 했다.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잘한다는 건 결과가 보장된다는 뜻이었고,

결과가 보장된 길을 걷는 건 실패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상한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성취감은 있는데,

그 성취감 아래 텅 빈자리가 있었다.


잘 해냈다는 사실과 좋아서 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감정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오랫동안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전환점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냥 어느 날, 잘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마음이 가는 일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을 뿐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서툴렀다.


남들보다 느렸고, 결과물은 초라했다.


잘한다는 확신 없이 뭔가를 붙잡고 있는

기분은 낯설고 불안했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 온 건

능력에 대한 확신이었는데,

이제는 그 확신 없이 걸어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서툰 결과물을 보면서도 다음 날 또 하고 싶었다.


잘하는 일을 할 때는 끝나고 나면 방전됐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지쳐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 차이가 결국 답이었던 것 같다.

잘하는 일은 나를 소모시켰고,

하고 싶은 일은 나를 채웠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다고

모든 게 순탄해지는 건 아니다.


서투름은 여전히 서투름이고,

결과가 즉시 따라오지 않는 시간은 꽤 길었다.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도 감당해야 했다.

"그거 해서 뭐 하려고",

"네가 잘하는 걸 하지 왜"

라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조차도 몇 번이나 다시 익숙하고

안전한 길로 돌아갈까 고민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잘하는 일은 남이 정해준 기준으로 잘하는 것이었고,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정한 기준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전자는 남의 인정이 있어야 완성됐고,

후자는 나 스스로의 만족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그 차이를 알고 나니, 서툴러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게 불안하지 않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 일을 하는 동안의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든다.


그거면 됐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결국 선택의 기준은 능력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잘하는 일은 나를 어딘가에 데려다줬지만,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알려줬다.


그리고 나는, 데려다주는 삶보다

스스로 향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아직 없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내면의 무언가를 채워가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