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축구 경기 보여준 교사 색출하기

교사가 범인인가, 색출이라니

by당근쥬스

우리는 모두 알고있다.

말 안듣고 여기저기 흩어진 남학생들을 한 곳으로 한방에 모으는 방법은 그들 가운데에 둥근 물체를 던져주면 된다는 것을.


그만큼 남학생들은 공에 진심이다.

그리고 정말 이해가 안갈 정도로 애들은 축구공에 진심이다.

볼 때마다 신기할지경...


어느 날 점심시간에 도서부 당번이 안나타나기에 얘 어디갔냐 했더니 밖에서 공을 차고 있다고 했다.

불러다 혼내고 축구공이랑 축구화 뺏는다고 했더니 공을 못 찰바엔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한다.

나와 노예 계약이라도 맺겠다고 하니 축구공을 어떻게 뺏을 수 있나...ㅋ


이런 남자 고등학교에서 지난 6월 12일 금요일 오전 11시, 북중미월드컵의 한국 vs 체코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애들은 들썩들썩 난리도 아니었다.


문제는 경기가 시작하는 11시는 4교시 수업 시간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기말고사가 2주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교감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는 축구 경기를 틀어주지 말라고 언질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애들이 4교시에 과연 폭동을 안 일으킬까? 싶어짐...


3학년부는 건물이 따로 있어서 4교시에 경기를 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1, 2학년이 있는 건물에 안전해질리가 없지...

결국 4교시에 1, 2학년 교실에선 교사 재량껏 틀어준 반도 있고 아닌 반도 있더라는...


급식도 안먹고 경기를 보겠다는 애들 때문에 결국 도서관 티비로 축구경기를 틀 수 밖에 없었고 애들이랑 하나되어 신나게 응원을 했다. 이겨서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ㅎㅎ


역시 월드컵은 함께봐야 재밌다.

저녁 경기가 아니라 치맥을 즐기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뿐.

대한민국 승리 기념으로 그간 바카라을 빌리면 주던 사탕과 과자를 애들에게 막 뿌려줬다.


아이들에겐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대표팀을 응원하는 경험이 어쩌면 수업 진도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다.

학습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활동도 중요하니까.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있고.


https://www.goodkyung.com/news/articleView.html?idxno=288085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네이버 메인에 뜬 기사 한 줄.


'월드컵 보여준 교사 색출 지시한 교장......'

https://naver.me/GRDdaLcA

어느 학교 교장의 지시에 학생이 분노해서 성명문을 올린 것이었다. 어딘지 찾아봤더니 경북 예천의 한 공립 고등학교였다.


학교 교훈에 '명랑'이 명시되어 있으니 아이들은 명랑하게 축구 경기 한번 보여주면 어디 덧나나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게다가 사제지간의 관계가 꽤나 돈독한 학교인 듯 하다. 아이들이 교장의 '교사 색출' 명령에 이렇게까지 극대노하다니. 우리 선생님은 우리가 지킨다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성명문에는 '존경하는 선생님들'이라고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교장은 '학교장'이라고 지칭하고. 이게 왠 지능적 돌려까기람. ㅎㅎ


일반고 학생, 게다가 학생회 부회장이면 생기부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못 낼 가능성이 높은데 당당하게 의견 피력을 하는 학교인 것을 보니 이런 학교에서 어떻게 학교장이 '색출'을 지시했나 싶어진다.


사실 수업 시간은 교사 재량이니 애들과 같이 월드컵 경기를 시청해도 문제는 없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격양된 학교장 반응이 나온 것은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1. 평소 학교에 별 사소한 민원까지 쉴 새 없이 들어오는 학교인 경우.


이미 관리자들이 민원 노이로제에 걸려서 괜히 수업 시간에 축구 보여줬다가 또 민원이 들어올까봐 지레 겁먹었거나, 이미 민원이 들어와서 학부모가 내 아이의 수업권 운운하면서 난리가 난 경우다. 저 성명문의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니 시험 앞두고 수업시간에 뭔 축구냐! 하면서 민원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우린 이미 참교육을 봐서 안다. 민원이 어떤 것인지. 현재 학교 현장엔 민원인은 많지만 교권국은 없다.


2. 학교장이 꼰대인 경우


공사립을 막론하고 간혹 이상한 관리자가 있다.

오죽하면 교육청이 갑질 신고센터를 설치했겠는가.


진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린 내일 또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있다. 하물며 이번엔 10시부터 시작이다. 3, 4교시가 경기시간과 겹친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체코전은 점심시간 한시간이라도 있었는데....) 게다가 기말고사는 약 열흘 남은 시점이다.


과연,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업시간 두 시간을 할애하여 내일의 경기를 보는 학교가 있을까?


2002년의 붉은 악마를 가슴에 품고있는 교사들과 공만 보면 미치는 남학생들의 콜라보가 과연 어떤 결과로 나올지 궁금해진다. 여학교들이나 좀 조용히 지나가려나...?


옆 학교처럼 수업은 수업대로 진행하고 축구 보겠다는 애들은 강당에 모아서 보게 하는것도 좋은 방법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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