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나 교사를 상대로 한 민원에 대한 문제 사례들이 뉴스 등을 통해 공유되고 있고, 그 정도의 심각성이 슬롯적 문제가 되고 있다.
'민원'은 민원인이 행정기관에 대해 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신청이나 요구를 뜻하는 것이라고 네이버에서 설명하고 있다. 흔하게는 우리가 행복센터에 가서 서류를 떼는 것도 민원이다. 그 외는 국민신문고나 안전신문고를 통한 민원이 가장 흔한 케이스로 볼 수 있으며 기관 홈페이지, 대표전화, 우편 등으로 접수되는 민원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떠올리는 민원은 아마 항의를 제기하는 민원일 것이다. 일전에 진짜 웃기게 봤던 김선태 전 주무관의 악성민원인 영상의 한 장면을 가져와보았다. 얼마나 현장에서 저런 사람을 많이봤으면 연기에 현실감이 살아있었다고...
공무원에게는 민원이 접수되면 무조건 응대 후 답변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한다. 담당 업무의 일환인 것들은 처리하면 되지만 본인의 분노 표출을 위한 민원의 경우에는 응대하는데 한계가 있고 당하는 사람의 사기를 엄청나게 떨어뜨리거나 업무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인 것이 문제다.
학교로 접수되는 민원들은 보통 학생들의 성적 관련된 민원(수행평가 절차의 공정성, 고사문항 오류 등등)과 학생 생활 관련 민원, 학교폭력 관련 민원 등이 있다. 여러 학교를 거치는 기간제 교사의 특성상 지금까지의 학교들에서 다양한 민원의 형태를 많이 봐왔고, 학교는 민원이 접수되면 시정해야 되는 부분들은 즉각 시정을 진행한다.
그런데 '학교 운동장이 모래판인데 잔디를 깔아달라', '학생들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해달라'라든가 아리수가 들어와있는 일선 학교들에 전부 교체하고 정수기 설치를 요구한다거나 하는 민원들은 비용 문제도 그렇고, 당장 처리가 어려운 것들이다.
근무하다 보면 '그래, 이건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지'라며 이해가 가는 것들도 많지만 간혹 '이게 맞나?'싶은 민원들도 상당히 있다. '왜 내 아이의 담임만 국영수가 아니고 예체능이냐'도 있었고, '화장실 휴지가 너무 얇으니 3겹으로 바꿔달라', '시험 범위가 너무 많아서 우리 애가 힘들어한다'같은 민원의 사례를 들으면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초등의 경우에는 소위 '기분상해죄', '아동학대죄'로 교사를 볶아대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초등 교사들 셋 중 하나는 법정 다툼중이란 웃지못할 얘기도 들었다.
학교는 많은 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기 때문에 별별 일과 사건들이 다 벌어진다. 그 많은 일들이 다 민원이 되어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민원은 익명이라는 생각에 마구 접수하는 경우들도 많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넣을 민원이라면 이렇게까지 할까 싶을 정도의 민원들이 현장에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일 제대로 안하고 민원을 방관하는 공무원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민원에 시달리며 정신병이 오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심지어는 자살하는 경우(서이초 사건 같은)도 발생한다.
나는 사서교사라서 상대적으로 교과교사들에 비해 민원에 노출된 편은 아니었다.(평가나 성적처리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간혹 들어오는 민원을 떠올려보자면,
1. 새학기 시작 전에 교과추천도서를 개인 메일로 보내달라 - 개별적으로 발송하진 않고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하므로 확인하시라고 한다.
2. 수행도서가 학교에 없어서 불편하다 - 똑같은 바카라은 학교에 많이 없다. 학생이 미리 대출을 못했다면 공공에서 빌리거나 사거나 하도록 되어있기에 절차를 안내드린다.
3. 공산당 선언이 왜 학교에 있냐? - 고등학교에서는 전공계열 진학 학생의 수행평가를 위해 마르크스 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 우리 아이들은 바카라을 읽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잘 읽고 사유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여튼 도서관은 나름 민원 청정지대인 줄 알았지만 결국 나에게도 악성민원이 발생했다. 업무 처리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했고, 민원인 측에서 교사의 태도가 무례하다는 민원을 교육청과 학교에 쏟아냈다. 업무와 관련된 민원이면 처리를 하거나 이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나의 태도를 지적하는 민원이 지속되자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교육청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난 혼자서 변호사를 통해 소송으로 갈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했다. 민원인에게 사과도 했지만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민원은 계속되었으며 결국 난 정신과에 가서 우울과 불안 심각단게 진단을 받고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원은 아직 현재 진행형인 상태다.
이렇게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을 끌고들어오는 민원의 경우 처리가 매우 곤란하다. 민원이라는 것은 원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건 민원인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고, 나아가 그냥 계속 민원을 추가로 넣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 기간 동안 시달려서 피말라 죽는건 해당 교사일 뿐. 그나마 다행인건 24년 10월부터 학교에 외부인이 들어오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가능해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민원인과 맞딱뜨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찌보면 지금같이 교권에 대한 관심이 높고 민감한 시기에 발생한 민원이라 그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홀로 목숨을 저버린 선생님들의 상황보다 나는 좀 나은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괴로운 와중에 교사들을 지원하는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는 창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관리자샘들을 비롯, 동료 교사들과 행정실 선생님들의 '우린 다 네 편이야'라는 말도 들었고 '혹시 그 사람이 찾아오면 내가 열심히 설득해서 돌려보낼게' 라는 경비 아저씨의 위로도 들었다.
난 기간제교사이고 계약은 올해까지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다가 학교를 옮기면 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 발생부터 남은기간 동안이 지옥일 것이기에 하염없이 막막하다.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이렇게 나처럼 전전긍긍하며 간신히 일상을 버티며 살아내고 있을지.
며칠 병원에 다니느라 자리를 비웠다가 마주한 학생들이 '어? 선생님 왜케 오랜만에 보는것 같죠? 어디 아프셨어요?' 라고 걱정스레 안부를 물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지금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지쳐있으면 안되지 싶어진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주긴 싫어서 오히려 더 씩씩하게 '너네 낼모레 모의고산데 공부 안하니~~?!!'라며 잔소리를 얹어줬다. 그래도 쓰러진 교사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예쁜 학생들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