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모두 치우고 시동을 걸었다.
차 안으로 따뜻한 바람이 천천히 퍼져 나왔다. 얼어붙었던 손끝이 조금씩 감각을 되찾았고, 차가운 유리창 안쪽에 하얗게 내려앉았던 서리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밖은 여전히 조용했다.
눈 덮인 헬사의 아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떠남의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엔진 소리가 고요한 마을의 정적을 깨웠다.
우리는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백미러 속으로 멀어지는 헬사의 풍경이 보였다. 하얀 지붕, 눈 쌓인 골목, 작은 창문 너머 희미하게 남아 있던 불빛.
마치 한 편의 영화 속 장면에서 빠져나오는 듯했다.
아우토반에 올라서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산촌의 고요는 뒤로 사라지고, 끝없이 뻗은 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차는 점점 속도를 올렸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누르는 묵직한 진동이 발끝으로 전해졌다. 차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커졌고, 계기판 위 숫자는 빠르게 올라갔다.
100km.
150km.
그리고 순간 시속 200km.
차창 밖으로 눈 덮인 들판이 아주 길~~~~~게 흘러갔다. 하얀 평원 위에 작은 마을들이 점처럼 놓여 있었고, 아침 햇살을 받은 나무들은 얼어붙은 가지 끝에서 반짝였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도 이상하게 선명하게 남는 장면들이 있었다.
눈 위에 내려앉은 빛.
멀어지는 작은 집.
끝없이 이어지는 길.
헬사의 느린 시간에서 출발해, 속도가 만들어내는 자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다시 현실의 풍경이 돌아왔다.
차량은 많아졌고, 도로는 복잡해졌다. 여행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피부로 느껴졌다.
즐거웠던 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베를린의 거리.
할레에서 만난 헨델.
헬사의 별빛.
눈 내리던 아침.
모든 것이 지나간 시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끝이라는 것은 언제나 아쉬움 속에서 또 다른 기억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