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보이는 화장실

by원성진 화가

헬사로 향하는 길, 차 안에서는 헨델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독일의 들판이 지나갔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햇빛이 길게 비추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마치 음악의 리듬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운전하는 내내, 할레 광장에서 바라보았던 헨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악보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 그가 남긴 선율은 오래된 시대의 음악이 아니었다. 몇백 년 전 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고독, 열정을 담아 세상에 건넨 한 편의 편지처럼 느껴졌다.

음악이 흐르는 순간, 시간의 벽은 사라진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그의 숨결은 남는다. 보이지 않는 감정과 생각은 소리라는 형태를 빌려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헨델은 오래전에 떠났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 음악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차는 점점 헬사에 가까워지며 달라지는 풍경에 모든 생각들이 풍경에 쏠렸다.

도시는 완전히 사라지고, 산과 숲이 길을 감싸기 시작했다. 좁은 마을길을 따라 들어서자 언덕 위에는 알프스 산장을 닮은 집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나무로 만든 지붕, 오래된 벽돌 담장, 작은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

누군가 저녁을 준비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은 따뜻한 기척이었다.


차창을 열자 차가운 산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풀 냄새와 젖은 흙냄새가 섞인 공기가 들어왔다. 도시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자연의 향이었다.

헬사의 풍경은 조용했지만 침묵하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 오래된 집 벽에 부딪히는 작은 울림들. 사람이 말을 멈추면 비로소 들리는 소리들이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마치 오래된 동화바카라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삐걱거리는 가파른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나무 계단은 발걸음마다 낮은 소리를 냈고, 손잡이를 잡으니 오래된 나무의 거친 결이 손끝에 느껴졌다.


3층 다락방.

낮은 천장과 드러난 나무 서까래, 오래된 가구들. 새것처럼 반짝이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공간이었다. 나무에서는 은은한 향이 났고, 방 안에는 낯선 곳에서 느끼는 긴장보다 이상한 편안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날 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곳은 따로 있었다.

3층 화장실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오래된 숙소의 화장실처럼 보였다. 그런데 변기에 앉아 큰일을 한바탕 보고,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천장 위 작은 투명창.

그 창 너머로 까만 밤하늘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인공적인 조명 하나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별들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지붕 위에 하늘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별빛, 오래된 집 안 작은 공간에서 마주한 끝없는 우주.

그 순간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밖은 고요했고, 방 안에는 나무가 내는 아주 작은 소리만 들렸다. 차가운 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들었고, 별빛은 말없이 천장을 넘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그 하늘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긴 여행 동안 지나온 모든 순간들이 그 별빛 아래 다시 모이는 느낌이었다. 베를린의 거리, 할레 광장의 헨델, 차창 밖으로 흘러가던 풍경, 그리고 지금 이 작은 산촌의 밤.


별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때로 인간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멈추지만, 결국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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