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 아침을 흘리며

by원성진 화가

오스트리아 빈의 아침은 조용했다.

도시의 분주함이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시간, 나는 일찍 일어나 작은 수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고, 이른 새벽의 습기를 머금은 바람에서는 흙과 물, 나무껍질의 은은한 향이 섞여 올라왔다. 수풀도 이슬을 아직 머금고 있어 슬리퍼 사이사이로 발이 차갑다. 물살은 유리처럼 맑은 표면 아래에서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고, 잔잔한 물소리는 마치 오래된 현악기가 낮게 울리는 음색처럼 귓가를 감쌌다.


나는 걸음을 늦추었다. 발밑의 자갈길 자갈이 사각거리는 소리마저 고요 속에 녹아들었다. 흐른다는 것은 형태를 바꾸며 계속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인간의 기억도 그렇다. 지나간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빛깔과 결로 변주되어 마음속 어딘가에 머문다. 빈과의 이별이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을 수로 위로 흘려보냈다. 물결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고, 그 위에 내려앉은 나의 감정도 함께 멀어져 갔다.


수로변의 나무들은 잔잔한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속의 형상은 흔들렸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존재는 언제나 타자의 반사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나무가 물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듯, 인간 역시 관계와 기억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존재를 사유하는 일이며,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빈의 몇몇 장소를 드라이브하며 둘러본 뒤, 원래는 곧장 린츠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행은 늘 계획보다 우연을 사랑한다. 나는 즉흥적으로 근처 아울렛에 들러 잠시 시간을 보냈다. 갓 내린 커피의 구수한 향이 매장 사이를 떠돌았고, 따뜻한 컵을 감싸 쥔 손끝에서는 아침의 냉기가 천천히 녹아내렸다. 미리 정해진 동선보다 길 위에서 탄생하는 돌발적인 선택들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자유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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