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by원성진 화가

베네치아의 물길을 따라 흔들리는 배에서 내린 순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눈앞에 떠올랐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이 성당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의 르네상스 건축 철학을 온전히 담고 있었다. 안드레아 팔라디오은 건축 철학이 스며든 외벽은 단정한 비례 속에서도 묘한 경건함을 품고 있었다. 어둠 속 대리석은 빛을 삼킨 채 은은히 숨 쉬고 있었고, 그리스 신전에서 영감을 받은 파사드는 인간과 신의 경계를 조용히 허물며 영원을 향해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종탑으로 오르자, 눈앞에 베네치아의 밤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진 운하와 불빛들. 물 위에 번지는 은빛 반사. 어둠 속에서 도시는 마치 거대한 보석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카메라보다 눈으로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산 조르조 마조레의 종탑 위에서 바라본 베네치아는 세속과 신성의 경계가 흐려지는 풍경이었다.

인간의 창조는 언제나 신을 닮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은 신의 침묵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신이 끝내 말하지 않는 자리에서 인간은 그림을 그리고, 건축을 세우고, 음악을 만든다.

은빛 운하와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나는 신의 손길이 닿은 거대한 캔버스를 바라보는 듯한 경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는 경험은 바로 머리 위에서 찾아왔다.



그. 때. 였. 다!

콰앙! 콰앙! 콰앙!


갑자기 머리 위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터졌다.

종이 울렸다.

아니, 내가 울리고 있었다.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울려 퍼진 종소리는 공기를 흔드는 것을 넘어 내 몸 전체를 진동시켰다. 놀람은 순식간에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거대한 금속의 울림은 마치 과거의 시간을 산산이 흔들어 깨우는 소리 같았다. 심장 약한 사람은 기절했을 수도.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번쩍이는 빛이 피어오르는 듯.


종은 시간을 울리는 소리다. 소리는 사라지지만 울림은 남는다. 인간의 기억과 용서 또한 그렇다.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울림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머리 바로 위에서 거대한 종이 공기를 가르며 흔들릴 때마다 온몸으로 퍼지는 진동이 나를 깊은 사유 속으로 밀어 넣었다.


바로 어제, 교황님을 알현하며 느꼈던 거룩한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그날의 축복과 기도가 종소리와 함께 되살아났다. 마치 신이 직접 내 안의 시간을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성경 속에서 종은 오래전부터 신의 임재를 알리는 소리였다. 출애굽기에서 아론의 제사장 옷단에 달린 금방울은 인간과 신의 경계를 알리는 울림이었다. 종은 기도를 부르고 시간을 알리며, 신성한 질서를 깨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날 밤 내가 들은 종소리 역시 내 안의 시간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종이 울릴 때마다 오래 붙들고 있던 과거의 그림자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종탑에서 내려와 성당 내부를 천천히 걸었다.

어둠 속의 성당은 더욱 깊은 신성함을 품고 있었다. 차가운 돌바닥 위로 희미한 빛이 길게 번졌고, 오래된 공기 속에는 기도와 침묵이 함께 머물러 있는 듯했다.

제단을 지나 한쪽 벽에 걸린 그림 앞에 섰을 때 나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예수와 제자들의 표정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얽혀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화면 안에서 거대한 연극을 만들어냈다.

최후의 만찬은 익숙한 구도를 벗어나 비스듬히 기울어진 원근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촛불과 천상의 빛이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어둠조차 신의 계획 안에 존재하는 듯 보였다.

그 그림 앞에서 나는 인간의 나약함과 동시에 구원에 대한 희망을 함께 느꼈다.


산 조르조 마조레의 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예술은 인간이 신에게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그 두 경계 사이에서 태어난다.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회화가 만들어낸 이 조화는 인간의 창조가 어디까지 신성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밤의 종소리와 그림 속 빛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그것은 과거를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건네주었다.

용기란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한 걸음 앞으로 움직이는 힘이라고 했다.

바람이 저항을 만나야 소리를 내듯, 인간 또한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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