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밤 골목

by원성진 화가

이탈리아 고속도로를 질주해 베네치아로 들어오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만 톨게이트 게이트를 잘못 지나쳐버렸다. 급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들어가 서류를 작성한 뒤 현금으로 통행료를 지불했다. 직원은 익숙한 표정으로 서류 한 장을 건넸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차에 올랐다.

잠시의 소동이 지나간 뒤, 베네치아의 밤이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밤은 깊은 꿈속을 걷는 기분을 선사한다. 꿈은 때로 현실보다 더 진실한 기억의 형태가 된다. 인간은 깨어 있을 때 목적을 향해 움직이지만, 꿈속에서는 존재 그 자체로 흐른다. 베네치아의 밤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목적 없이 아름다운 도시.

화려한 건축물과 수로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지만, 이 도시의 진짜 얼굴은 화려함 너머에 숨어 있었다. 진정한 베네치아의 밤은 어둠이 시작되는 골목 구석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빛이 사라진 곳에서야 오히려 형태가 선명해진다.


골목 안쪽에는 습기를 머금은 돌 냄새가 가라앉아 있었다. 물결은 벽 아래를 조용히 흔들었고, 오래된 창문 틈에서는 희미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관광객의 웃음소리가 멀어질수록 도시는 오히려 자신의 본래 목소리를 드러냈다.

이곳의 어둠은 의미가 오래 머물다 가는 저장소에 가깝다.

세월이 남긴 금 간 벽, 철심으로 덧댄 흔적, 수없이 많은 발걸음에 닳아버린 돌길. 모든 것이 한데 겹쳐지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을 만든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예술은 태어난다.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끝내 붙잡아보려는 인간의 오래된 몸짓이다.


삶도 어쩌면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자꾸만 빛나는 순간만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마음을 오래 흔드는 것은 삶의 구석에 조용히 남겨진 작은 흔적들이다. 먼 곳의 거대한 진실보다 가까운 벽의 균열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베네치아의 밤이 말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둠 속에서도 삶은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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