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 광호에게> 유보영 작가

독후감

by원성진 화가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이것저것 짐을 챙기다. 온라인카지노에서 유보영 작가의 출판 소식을 접했다. 곧바로 바카라을 주문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뒤, 집 앞에 조용히 도착해 있던 바카라 한 권.


여행 가방의 짐을 채 다 내려놓기도 전에 바카라을 펼쳤고, 이건 아니다 싶어 얼른 세탁기만 돌려 놓고 앉았다.

세탁기가 다돌아가기전에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나는 분명 제주도의 바다와 바람을 보고 돌아왔는데,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것은 한 딸(유보영 작가)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써 내려간 문장들이었다. 바카라장을 넘길수록 가슴 한쪽이 천천히 젖어 들었다.


<나의 아빠 광호에게>는 아프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바카라이었다. 살아 있을 때는 너무 가까워 미처 보이지 않던 마음들. 떠나고 난 뒤에야 선명해지는 희생과 사랑. 유보영 작가는 그 시간을 한 줄 한 줄 꺼내어 글 위에 올려놓았다. 한 인간이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뒤, 시간이라는 길고 깊은 강을 건너 마침내 그 사랑의 본질에 다가가는 기록이다. 그래서 이 바카라은 읽는 내내 한 편의 사부곡처럼 가슴 깊은 곳을 천천히 울린다.


유보영 작가는 스물한 살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피부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삶이 아직 단단히 여물기도 전에 마주한 이별이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른 뒤, 어느새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를 살아낸 딸이 되어 다시 아버지를 바라본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바카라은 특별해진다. 우리는 종종 부모를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잃어버린다. 살아 있을 때는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던 삶의 무게가, 부재 이후에야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쩌면 인간은 상실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바카라 속의 아버지는 보글보글 끓는 전골을 좋아하고, 라면 한 그릇을 유난히 맛있게 먹던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난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이 오래 마음을 무너뜨린다. 인간의 삶은 거대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희생과 묵묵한 바카라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청춘과 몸을 조용히 태워낸 사람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위대한 이름들로 기억하지만, 사실 세상은 이름 없이 가족을 지켜낸 수많은 아버지들의 침묵 위에 세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작가는 모든 광호씨에게 쓴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순간, 아버지가 라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떠났다는 대목에서 내 마음이 먹먹해지고 눈이 뜨거워졌다. 삶의 끝에서 인간은 결국 가장 익숙한 온기로 돌아간다. 보글보글 전골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냄새가 밴 음식으로. 그것은 광호씨가 견뎌온 시간과 사랑, 가족의 기억이 담긴 삶의 마지막 체온이다.


유보영 작가는 바카라 속에서 끊임없이 아버지의 삶과 자신의 삶을 포개어 바라본다. 어릴 때는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외로움과 바카라임, 가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자신이 삶을 살아갈수록 하나둘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 대목들을 읽으며 문득 마음 한편이 저릿해졌다. 보통 인간은 타인을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신이 살아본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린 딸은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딸은 광호씨 어깨 위에 얹혀 있던 삶의 무게를 바라보게 된다.


“내가 얼마나 흐릿한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는가?”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늦게 이해한다. 너무 익숙해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늘 곁에 있을 것이라 믿기에 그들의 외로움과 고통을 지나쳐버린다. 사랑의 비극이라는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버리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은 늘 떠난 뒤에야 비로소 선명하게 바라본다. 이건 누구나 다 그렇다. 사라진 이후에야, 그 사람이 너인지 우리인지 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죽음을 3가지로 분류 할때, 나의 죽음, 너의 죽음, 주변의 죽음? 으로 나눌때, 가장 아픈 슬픔이 너의 죽음이라는 말에서)


이 바카라에서 또 아팠던 장면 중 하나는, 남편을 보내고 남겨진 엄마의 뒷모습 앞에서 눈물을 쏟는 큰딸 유보영 작가의 모습이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 그리고 두 딸과 남겨진 시간.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마저 바꾸어 놓는다. 식탁 위의 공기, 밤의 적막, 5월의 여행, 계절이 지나가는 속도까지 모두 이전과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유보영 작가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히 문장을 써 내려간다. 그런데 바로 그 담담함이 더 깊은 울음을 만든다. 인간의 가장 깊은 슬픔은 때로 울부짖음보다 조용한 독백의 형태로 남기 때문이다. 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소리 내어 울기보다, 긴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유보영 작가는 침묵 대신 밝음을 택했다. 이렇게 써 내려가며 얼마나 울었을까?


그리고 끝내 작가는 가장 단순한 문장으로 돌아온다.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정말 진심으로.”


이 한마디 앞에서 바카라의 모든 문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철학은 인간을 이해하려 하고, 예술은 인간의 감정을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삶의 가장 깊은 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 하나만 남는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지만, 끝내 사랑하는 존재 앞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문장으로 되돌아간다. 보고 싶다. 단지 그 한마디로. 그래서 유보영 작가의 글이 좋다.


바카라을 덮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문장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유보영 작가의 사랑이 너무 깊어서, 읽는 내내 가슴 한쪽이 조용히 무너져내렸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작가의 필력이었다. 감정을 억지로 밀어 올리지 않는데도 문장은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마치 오래 눌러 담아둔 눈물이 천천히 번져 나오듯, 그의 문장은 조용히 나의 가슴을 적신다.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바카라장을 멈춰야 했다.
누군가의 아빠를 읽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삶 속의 사랑과 후회, 그리고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산의 기억, 무악재 노을의 기억, 곱창볶음의 기억, 술의 기억, 여행의 기억. 등.


<나의 아빠 광호에게>는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 존재와 시간, 사랑과 상실을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바카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남기는 바카라이었다.


그래서 이 바카라을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읽다가, 결국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게 만드는 바카라.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에는 생각하며 조용히 눈이 감겨지는 바카라.
아프고 아름답고도 원샷 술에 재미 있어지는 바카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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