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광장
성당 밖으로 나오자 피렌체의 햇살은 어느새 완전히 도시를 덮고 있었다.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하려 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결국 입장을 포기하고 도시를 걷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곧 마음이 가벼워졌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이 오히려 더 많은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르노 강변으로 향하자 물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강물은 잔잔하게 흘렀고, 작은 물결 위로 부서지는 빛은 마치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강가를 따라 걷는 사람들은 느긋했다. 벤치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사람, 강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연인, 강아지와 산바카라하는 노인. 도시 전체가 천천히 숨 쉬고 있는 듯했다.
베키오 다리에 도착했을 때 다리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다리 위에 빼곡히 붙어 있었고, 작은 상점들은 보석과 시계, 기념품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다리 아래로는 아르노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오래전 상인들이 이곳에서 물건을 팔고, 서로 가격을 흥정하고, 소문을 나누었을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다리 건너편에서 가죽 장갑 가게를 발견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장갑들은 정말 작은 예술 작품 같았다. 검은색, 갈색, 짙은 붉은색, 부드러운 회색 장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나를 손에 들어보니 가죽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손끝에 닿는 감촉만으로도 오랜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도대체 몇개를 샀는지 ㅠㅠ.
점심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오래된 외벽과 달리 내부는 아늑하고 따뜻했다. 천장과 벽에는 빨래를 널어놓았지만 거슬리지 않았다. 근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것이 장식이라고 했다. 나무 의자와 작은 조명들이 공간을 포근하게 만들고 있었다.
랍스터 파스타와 피자가 테이블 위에 놓였을 때, 음식의 향만으로도 배가 고파졌다. 파스타 위에는 큼직한 랍스터가 올려져 있었고, 붉은 소스와 바질 향이 어우러졌다. 면은 적당히 쫄깃했고, 랍스터 살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피자는 얇고 바삭한 도우 위에 모차렐라 치즈가 녹아내리고 있었고, 바질 잎이 초록빛을 더하고 있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입안 가득 고소함과 향긋함이 퍼졌다.
식사 후 다시 골목길로 들어섰다.
피렌체의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했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돌길은 오래된 세월만큼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고, 건물 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었다. 작은 성당 하나를 발견해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조용했다. 몇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긴 의자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저녁 무렵,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창밖으로 피렌체의 지붕들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광장에 도착하자 도시 전체가 눈앞에 펼쳐졌다. 붉은 지붕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그 사이로 두오모의 거대한 돔이 우뚝 솟아 있었다. 베키오 다리와 아르노 강, 멀리 보이는 언덕들까지 모두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 노을빛은 도시 전체를 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어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었고, 어떤 이는 말없이 풍경만 바라보았다. 바람은 서늘했고, 멀리서 거리의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도시는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슬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이 만든 것이 이렇게 완벽하게 어우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밤버스 안은 조용했다.
창밖으로는 별빛 아래 언덕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침에 버스를 함께 탔던 사람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두 번이나 함께 지나게 된 우연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릴 때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버스는 천천히 어두운 언덕길을 올라갔다. 창밖에는 드문드문 불이 켜진 집들이 보였고, 멀리 피렌체의 불빛이 작은 별무리처럼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풍경과 사람들, 햇살과 돌길, 성당의 침묵과 강물 위의 빛은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