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어딜 봐?

한계 앞에서, 나는 어디를 바라보는가

by원성진 화가

해가 완전히 올라오기 전의 시간에 산바카라을 나섰다. 겨울이 좀 심하게 심술을 부리는 날씨였다. 공기는 차갑고 계절은 깊어지고 있었다. 나무들은 여전히 마른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고, 홍제천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저마다 다른 속도를 가지고 흘렀다.


걷다 보면 늘 같은 생각에 부딪힌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흔들리는 걸까?

왜 설명으로는 도무지 수습되지 않는 순간들이 반복해서 찾아오는 걸까?

고통이나 실패, 죄바카라감 같은 것들은 아무리 준비해도 정면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마다 인간은 한계라는 단어 앞에 서게 된다.


야스퍼스와 니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인간은 혼자 떠 있는 존재가 아니고, 언제나 세계와 맞닿아 살아간다. 세상과의 접촉 방식이 곧 삶의 방식이 된다. 이 출발점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힌 다음,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조금씩 달라진다.


야스퍼스를 떠올리면, 산바카라길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순간이 겹쳐진다. 그에게 인간은 삶의 극단적인 순간들에서, 자기 자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존재다. 죽음이나 고통 앞에서 인간은 설명을 멈추고, 말로 닿지 않는 방향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이때 인간이 세계의 저편을 향해 긴장을 품는다고 보았다. 그 긴장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는 가장 진지한 몸짓이다. (야스퍼스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지금은 이렇게만 정리하자.)


니체를 떠올리면, 시선은 자연스레 발밑으로 떨어진다. 걷는 중에 갑자기 멈춰 서서,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순간처럼. 니체에게 한계는 바깥을 향해 열리지 않는다. 그 충돌은 인간 내부로 되돌아온다. 신이나 초월에 기대기보다, 다시 자기 자신을 문제 삼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인간은 무너지면서도 그 자리에서 자신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니체가 말한 신비는 멀리 있지 않고, 인간이라는 존재 깊숙한 곳에서 숨 쉬고 있다.


같은 길을 걷고 있어도, 고개를 드는 사람과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전혀 다른 풍경을 본다. 야스퍼스에게 한계는 세계 너머를 향해 열리는 문처럼 느껴지고, 니체에게 한계는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 두 방향을 번갈아 경험한다.

어떤 날에는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감각에 사로잡혀, 말 없는 무언가를 향해 기대게 된다. 또 어떤 날에는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서게 된다. 인간은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산바카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까보다 햇빛이 분명해졌고,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세계는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방향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마 철학이 해주는 일은 이 정도일 것이다. 답을 주기보다는, 시선의 각도를 미세하게 바꾸어 주는 일. 그래. 이 두 철학자의 가장 큰 공통점은 철학에서 뭔가를 구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계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때로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야스퍼스와 니체는 그 두 방향이 모두 인간에게 허락된 깊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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