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명의를 찾아서

혈루증 여인처럼 마음앓이 하는 청년들에게

by청년 클레어

구독자님들 중에 제 남편의 팬들이 계셔서 연재 글 <내 의사 남친의 이솝우화 카지노 게임>을 쓰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턱없이 부족하네요. 제 온라인 게임과 편도 1시간 30분 거리인, 남편이 30년 살았던 집에서 신혼을 시작한지라 매일이 전투랍니다. 대신 간략하게 근황부터 우선 전해드릴게요.


단연 천재와의 신혼생활이 어떤지 궁금하시죠? 요즘 싱글 때부터 키우던 14살 스코티시 폴드 고양이와 6개월 된 푸들 강아지를 동시에 키우며, 매일이 재밌는 시트콤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혼의 짝꿍이란 말이 있듯, 함께 살수록 서로 더 좋다고 느껴요. 남편은 본인이 참 장가를 잘 갔다고 하지요. 제가 "나 현모양처 맞지?" 하면 "그럼, 그럼" 한답니다.


울집 14살 스코티쉬폴드 고양이와 6개월된 푸들 강아지. 편집, 각본 없는 실제 모습으로 둘이 아옹다옹은 있으나 온순한 편이라 다행이에요
2개월 반때 모습
2개월 반때 모습
하품인지 포효인지
올 6월에 간종양(양성) 수술 받고 지금은 건강해진 고양이. 엄마 고양이는 15살반인 올해 1월 무지개 건넜고 1년반 터울의 이 아들 고양이는 제가 태어날때 받아냈죠
올해 찍은 사진인데, 14살인데 동안에 잘 생겼죠?



주일에는 편도 1시간 30분 거리를 자차로 달려서 함께 대예배를 드리고, (대예배 마친후) 제가 주일학교를 섬기는 동안 남편은 2~3시간을 근처 카페에서 자기 일을 하며 기다리는 것이 거의 매주 루틴이에요. 어제는 교회에서 준비한 독거어르신 추석 선물을 전달해 드리러 함께 갔다가 집으로 왔지요. 올리고 싶은 주제들은 너무 많은데, 에너지 안배를 잘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노려 볼게요.





오늘 서두 글은 청년 클레어의 < 7. 김유정 '동백꽃' > 서두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하단 생생큐티는 이번에 새로 쓴 글이오니 참고해 주세요. 혈루증 걸린 여인의 간절하면서도 불안하고 때론 절망적인 마음이, 저의 청년의 때에 드문드문 스치고 지나갔던 날 선 감정과 겹쳐서 느껴져 이리 연결해서 올려 봅니다.






가난한 청년의 초상

( 부제: 청년 빈곤, 스튜던트 푸어)


하늘 높이 솟은 빌딩의 소실점은
분명 저 하늘 끝에 있고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볼 때 소실점은
지구 중심에 있을 테니깐요



*초상(肖像) : 사진, 그림 따위에 나타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 또는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

소실점(消失點) : 실제로는 평행하는 직선을 투시도상에서 멀리 연장했을 때 하나로 만나는 점.



[인용글, 사진 출처] 그림 기초 혼자서 연습하는 법 3강 투시도법 1편 소실점 완벽 이해 하기|작성자 디자인선수



국민학교 때였던가.

빽빽이 밀집되어 있는 집들 사이에서, 우리 집의 위상은 9평으로 이름 지어졌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가끔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거기에는 집 평수를 쓰는 항목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의 집은 ‘평수’라는 개념이 있고, 그것으로 집 크기를 재기도 하고, 다른 집과 비교도 하고 심지어 인생의 서열과 인간의 존엄마저 가늠되곤 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하나의 계급언어가 될 수 있음도 말이다.

9평의 아늑했던 내 고향집.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살았다. 적어도 집 평수를 적어냈던 국인학교 저학년 전까지는 나는 한 번도 그 집이 비좁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먼 훗날 알았다. 그 집에서 11명의 식구가 살았다는 내 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껌벅이며 놀라는 것을 보고, 내가 꽤 많이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9평이지만 이래 봬도 방 세 칸에 마루와 부엌이 있었다. 마루와 부엌이 같은 말이라는 것과 세수하는 공간인 세면실은 이내 현관이라는 사실이 꽤 아쉽긴 했다. 즉 다른 집의 현관이라 일컫는 공간에서 우리는 신발을 신고 벗었고 동시에 그곳에서 세수를 하고 여름이면 목욕도 했다. 집에 개별 수도가 없었기에 양동이로 공동수도에 가서 물을 받아 채워놓는 것은 어른들 하루 일과였다. 겨울에는 그 물 중 일부를 연탄 아궁이나 곤로-가스레인지 전 세대 부엌 가열도구-에 올려 데웠다. 그 데워진 온수는 세수나 목욕 시 찬물과 조금씩 섞어서 썼다.

겨울 온수 얘기하니깐 끔찍한 참사가 떠오른다. 겨울 어느 날, 언니가 출근하려고 세숫대야에 이제 막 데운 뜨거운 물을 쏟아부었다. 이내 찬물을 섞어 쓰려는 찰나 늦잠을 잤던지 작은 쥐 한 마리가 그만 그 뜨거운 물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러나 가난과 불편, 결핍이 일상인 우리는 그 참사 앞에서 단발성 비명과 투정만 내지를 뿐 사고현장은 급하게 수습되었다. 우리는 쥐 한 마리, 그 생명의 허망함을 공감해 주기에는 먹고 살기에 빠듯했다. 그 하루하루의 아침이 늘 전쟁 같았다.

출처 : 청년 클레어의 포레스트 운남의 잭팟(1)





가난의 느낌

청년이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 '가난의 상속과 절망'은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간 불시에 덮치곤 한다. 어느 해였던가, 고시원에서 1년 반을 지냈었다. 직사각형의 네모난 공간에서 달팽이처럼 느리고 더딘 청춘을 낭비하듯 때론 부여잡듯 보냈었다. 어느 날은 낭만적인 비전에 불타오르다가도, 이내 현실의 냉혹한 청구서 앞에서, 찬물로 세차게 얻어 맞으며 무너져 울어버리곤 했었다.

그 시절 가난은 안간힘을 써도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 같은 족쇄였다. 가난, 이미 한참 전에 마스터한 인생의 난제이건만, 내 몸 여기저기서 몸살과 열병이 피어오르는 날이면, 구더기처럼 저 변기통 밑에서 끔찍하게 기어 올라오곤 했다. 가난이 징그럽고 지긋지긋하다 느껴지다가도 이내 이 결핍이 익숙하고 차라리 체념적으로 편안했다.


기억의 망각과 소환

괴롭고 힘든 기억들은 망각의 언덕 어디메쯤 숨겨두고 아니 버려두고 잘도 살았건만, 어느 날 득달처럼 선명하게 찾아오는 가난과 불행의 기억들은, 마치 소실점을 찾아 장엄하게 침묵하던 화면이, 갑작스럽게 괴물처럼 클로징 되어 충돌하는 난감함을 주기도 했다.


달팽이처럼, 가난의 짐짝을 짊어지고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 그게 힘들게 뭔가, 무거울게 뭔가, 있는 자들도 다들 그 나름의 무거운 짐짝은 한두 개 이상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조적 위로를 하곤 했었다. 가난이 무겁고 힘든 게 아니었다. 이 가난이 피어내는 한숨과 투정과 간헐적 언쟁, 느린 걸음, 공연히 벌어지는 듯한 타자와의 시간들, 마음앓이의 빈 공간들이 싫었던 것이다. 그냥 자유롭고 싶었다. 어디에 매이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삶을, 오직 그것만을 등에 지고 살아 보고 싶었다.


고시원의 소리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온라인 게임생활을 시작하며 월 45만 원 하숙생활도 잠시, 몇십만 원 아끼겠다고 고시원으로 옮겼다. 어머니의 연체된 1000만 원 카드론 빚을 빨리 갚겠다고 말이다. 좁다란 고시원 복도, 낯선 타인들, 바스락 거리는 옆방의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가끔은 이 단단하게 옥죄는 공간에 나처럼 묶여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무슨 꿈이 있는 것일까.

출근하기 싫은 날들

일어나는 게 싫었다. 하루가 시작되는 게 싫었다. 외국계 기업이라 혹자는 부러워했지만 업무도 적성에 안 맞았고, 이 신입 연봉으로 삶의 청구서와 누적 적자 모두를 해소하기엔 버거웠다.


창문 없는 고시원이 좋은 건, 내가 불을 켜지 않는 이상, 이 공간은 내내 밤을 가장하여 나를 숨겨주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고 버거운 것이 지금만이랴 생각했다. 대학교 때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자, 겨울엔 얼음장 같은 집 베란다에서, 겨울잠바를 입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미니 난로에 의지해 공부했다. 여름엔 폭염의 날씨에도 선풍기 하나 의지해 땀 흘리며 그리 지냈다. 집 거실에 나가면 자그나마 에어컨이 있었지만 안일한 가난에 지고 싶지 않았다. 추위로 잠을 깨우고 더위로 고통스러운 결의를 다지곤 했다. 내 방 없이 산지 20년 넘는 세월은 늘 그런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궁색한 현재를 알리 없는 온라인 게임에선 더없이 당당한 커리우먼 흉내를 내곤 했었다.




고시원 침대 속에서 마치 누에 속 애벌레처럼 축 늘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캄캄한 어둠은 내 미래의 어둠 같았다. 아침 겸 점심을 대충 먹고는 저녁은 1000원짜리 김밥으로 몇 개월을 버틴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엄지발가락에 발톱이 비집고 들어와 통증이 밀려왔건만 택시비 아끼다 오히려 더 덧나 한참을 고생했다.


하루는 회사에 월차를 내고 고시원 좁은 공간에 반나절 내내 누워 있는데, 삶이 헛헛했다. 아무런 백도 없는 인생, 가난의 되물림에 제대로 발목 잡힌 삶, 그땐 매일 천국을 그리워하며 매일을 버티기도 했었다.


그런 날은 어둠 속에서, 국민학교 운동장의 어느 풍경과 당시 20대 청춘의 날들을 오가며, 오늘도 숨 가빠야 하는 내 삶의 기원들을 더듬거리곤 했다.


나도 어렸을 때 생활이 또 삶이 어려웠다. 내가 국민(초등) 학교 때 우리 집은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이었다. 가족이 11명인데, 9평에 살았고 부모님이 다 계시는데도 영세민이 될 만큼 어려운 사연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7남매인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정말 각자도생, 이 경쟁슬롯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중. 고등학교도 그렇지만 형편이 좀 풀린 대학 때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그때도 내 개인방이 없어서 내내 난방과 냉방이 안 되는 베란다에 공부방을 만들어, 겨울엔 난로 또 여름에는 선풍기로 지내곤 했다. 그 덕에 학부 수석장학금을 비롯 대학 내내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조기졸업으로 학비를 아낄 수도 있었다. 난 다행히 또 무사히 내 삶의 위험을 잘 견디고 피하며 살아온 것 같다.

출처: 청년 클레어의 <땀소리> 중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학회실, 어머니와 약속대로 학비 등은 내가 스스로 해결해서 다니겠다 했다. 어느 해가 안 그랬으려 마는, 그 해에도 우리 집은 빠듯했다. 동아리 방, 학생회실을 오가며 안면을 익힌 선배들과 대화하다 헌 전공바카라 얘기가 오갔다. 신입생이라 수줍음이 가득했으나 버릴 거면 저를 달라 하여, 그 학기 전공바카라 3권을 그렇게 조달 받았다. 헌바카라을 구하기도 해서 정말 가성비 작렬하는 새로운 봄이었다.


동기들은 의례히 미팅이나 대학축제, 화려한 봄을 즐겼으나 나는 도서관과 선교단체 건물을 오가는 일 외에는 일절 놀지도 않았다. 집이 있는 안양에서 서울에 있는 캠퍼스까지는 편도로 1시간 30분이건만 그때는 하숙이나 자취할 엄두도 못 냈다. 오히려 전철이 공부가 잘 된다며, 사람 없는 시간대에 전철을 타서 이동시간마저 아꼈다. 매 학기 성적장학금을 타야 했기에, 늘 긴장했고 언제 등수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피 마르는 시간들이었다.




2024년 봄, 세월이 흘러 나도 조기 승진해 임원도 되고 멋진 짝꿍도 만났다. 상전벽해처럼 흘러간 세월 속에서 과속했던 시간들이 가끔은 욱신거리는 근육통처럼 생각날 때가 있다. 그래, 30대 초반에 찾아왔었던 탈진과 번아웃은 내내 누르고만 있었던 생채기가 엄살을 받아달란 사인이 아니었을까. (오홋~ 꼬마냄비의 재기)


어느 주말 시외버스터미널.

새벽을 뚫고 하늘은 어김없이 열렸다. 여릿한 빛 좋은 쪽빛 하늘 너머 어스름이 떠오르는 태양과 일대의 금빛 향연, 감격스러운 이 하루를 마음 가득 누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 였을까. 지금의 평온과 안도가 마치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가끔은 어색하다.


시외버스터미널 편의점에 곁 붙은 간이식당에는 몇 안 되는 청년들이 간간이 보였다. 토요일 새벽, 이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먼 길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홀로 컵라면을 먹고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사랑의 도피인지 어색한 가방을 챙겨 와 출출한 허기를 채우려는 남녀 커플 청년들.


"여러분의 청춘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마음 깊이 그 어딘가에 자리 잡혀 있었을, 20대의 내 청춘이 그들 서너 명의 청춘들에게 독백처럼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건국 이래 부모 세대보다 더 빈곤해질 거라 우려 섞인 시선을 받는 청년들, 그들의 하루가 안쓰럽고 궁금하고 되뇌어지는 요즘이다. 그들 모두, 삶이 달팽이처럼 더디고 허물어질지라도 버티고 견디면서, 안녕 또 안녕하시길 두손 모아 안부를 전한다.








[생생큐티] 2026년 9월 5일(토) 12년 혈루증 앓은 여자 (마가복음 5장)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마가복음 5:25-34)




12년이면 아기가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될 세월입니다. 여인은 이 긴 세월 동안 혈루증을 앓아왔습니다. 하혈하는 병의 특성상 빈혈 등 몸의 컨디션이 늘 안 좋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릿한 냄새와 언제 있을지 모를 대량 하혈 때문에 집 밖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입니다. 공예배를 비롯한 신앙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히 오늘은 26절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라는 대목을 주목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유대 랍비 문헌(탈무드 등)에는 만성 출혈(혈루증)을 멈추기 위해 행해졌던 온갖 기괴하고 비과학적인 처방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가령 여인을 길모퉁이나 교차로에 세워두고 뒤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큰 소리로 여인을 놀라게 하여 출혈을 멈추게 하려는 미신적 시도라든지, 보리 낟알 속에서 발견된 벌레의 가루를 포도주에 타 마시게 하거나 특정 짐승의 내장, 특정 식물의 재를 먹게 하는 행위 등이 그러합니다. 심지어 타조의 깃털, 짐승의 뼈를 태운 재를 몸에 바르거나 살갗에 직접적인 고통을 주는 처방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여인도, 열두 해 동안 수많은 자칭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치료라는 미명 아래 온갖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가학적 시술을 견뎌내야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치료를 받고 정당한 진료비를 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대 슬롯의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기 전 막대한 착수금을 요구하거나 비현실적인 특효약을 구실로 지속적인 돈을 갈취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합니다. 여인은 병을 고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12년 동안 의사들의 주머니에 털어 넣었고, 결국 가진 것 모두를 허비하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병이 도리어 더 중하여졌습니다. 돈을 다 날리고 끔찍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습니다. 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악화되었을 뿐 아니라 부작용도 있었을 테고, 무엇보다 심적인 고통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는 병을 더욱 중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12년은 단순히 치료를 받으며 마음고생만 한 시간이 아닙니다. 율법(레위기 15장)에 따르면 혈루증 환자는 '부정한 자'로 분류되어 그가 앉은 자리, 만지는 사람까지 모두 부정해졌습니다. 그 병이 미혼일 때 걸린 거라면 부정하여 결혼을 못 했을 것이고, 기혼자라면 이혼을 당했을 일입니다. 그나마 의사를 찾아다닐 수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여인은 아주 가난한 하층민은 아니었을 텐데, 멀쩡하게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병 하나 잘못 걸려 인생이 만신창이가 된 것입니다.


마치 내가 의도하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는데 들이닥친 인생의 교통사고와도 같습니다. 자기를 도와줄 수 없는 무력한 가족과 지인들, 자신을 잘 고쳐줄 것처럼 돈만 챙겨간 세상의 의사들. 인간은 하나같이 무력하고 간악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당시 천형을 받았다고 천대받고 격리되곤 했던 병자, 장애우, 귀신 들린 자들을 단 한 푼의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고치신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런 그녀가 혹시나 하는 간절함으로 기적을 바랐는데, 정말 예수님의 옷깃을 만지기만 했는데도 혈루병이 나았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향해 "딸아(막 5:34)"라고 부르시며 잃어버렸던 슬롯적 존엄성과 영혼의 평안을 단번에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즉, 그녀의 병이 완치되었음을 만인 앞에서 공식적으로 공증해 주신 것입니다.


ㅡ 오늘 큐티 적용부분은 하략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