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빈 공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채우고 있었는가?
연봉이 2억 원에 닿았던 해, 저는 제가 돈을 잘 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 통장에 남은 건 5천만 원이었고, 그마저도 결국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6년째 경제서를 읽는 The부자북클럽에서 130여 권의 바카라을 읽으며 시장의 언어를 정교하게 익혀왔어요. 금리와 자산과 사이클을 제법 잘 읽어낼 줄 알게 됐죠.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어요. 시장의 흐름을 정교하게 읽어도, 제 통장은 여전히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돈을 벌고 있었던 게 아니라, 돈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돈을 남기는 사람과 돈을 쓰는 사람은, 시장을 얼마나 아는가보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통제하는가로 갈렸습니다. 저는 그 순서를 거꾸로 지키며 살았어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우는 데는 집요하게 관찰하고 분석해 전략을 세웠지만, 정작 제가 벌어들인 돈을 왜 그렇게 쓰는지는 단 한 번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돈의 관념을 깨부수기 위해 이전 글에서 돈을 왜, 어디에, 어떤 결핍을 채우려 했는지 적었습니다. 그 후에 경제, 돈, 투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이 세 가지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보니 이건 순서대로 밟아가는 계단이 아니라, 동시에 떠받쳐야 하는 세 개의 기둥이었습니다. 어느 걸 먼저 시작하든 상관없이, 셋 중 하나라고 빠지면 결국 무너져요.
금리, 인플레이션, 환율, 경기 사이클처럼 나 개인을 벗어난 거시적인 흐름을 읽는 공부죠.
현금흐름, 위험관리(보험), 세금, 은퇴, 상속까지 — 실제 재무설계사들이 다루는 ‘기록과 설계’의 영역이 여기 들어가요. 그리고 그 위에, 제가 왜 그렇게 돈을 쓰는지에 대한 심리와 습관 (행동재무학의 영역)까지 함께 포함됩니다. 이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돈 관리는 완성되지 않더라고요. 기록만 있고 심리를 모르면 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알 수 없고, 심리만 알고 기록이 없으면 그 앎이 숫자로 이어지지 않거든요.
둘이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뿌리는 하나예요. 자원은 한정돼 있고,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원리 — ‘희소성’과 ‘기회비용’이요. 제가 이 돈을 커피에 쓰면 저축엔 못 쓰는 것처럼, 정부가 국방비를 늘리면 복지 예산이 줄어드는 것도 같은 원리예요.
단순하고 쉽게 들여다 보면 경제공부와 돈공부를 가르는 건 원리보다는 사실 '규모'의 차이죠. 같은 선택과 포기의 원리를 한 사람에게 적용하면 ‘돈’(미시경제)이 되고, 수백만 명에게 적용해서 합산하면 ‘경제’(거시경제)가 됩니다. 금리, 인플레이션, 리스크 같은 개념들은 이 원리가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난 사례들이고요. 경제는 저 바깥의 별개 시스템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포기가 쌓인 결과였던 거예요.
경제공부와 돈공부의 공통분모를 파악하니 막연히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경제공부와 돈공부의 사이가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자산에, 어떤 비율로, 어떤 속도로 들어갈 것인가 — 돈공부보다 훨씬 좁고 구체적인, 돈공부의 실행 파트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셋에 순서가 있다고 믿었어요. 투자공부(구체적 기술)부터 손을 댔거든요, 경제공부도 돈공부도 갖추지 못한 채로요.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투자해도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건 순서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셋 중 하나가 비어 있으면, 나머지 둘이 아무리 단단해도 전체가 흔들린다는 게 진짜 문제였습니다. 부를 쌓기 위해서 경제공부, 돈공부, 투자공부의 세 축의 높이를 잘 맞춰야 하는 구나를 깨닫게 되었어요.
신기한 건, 이 세 기둥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하나로 겹쳐진다는 거예요. 이유는 단순해요. 바카라임과 선택이 늘어날수록, 하나의 결정 안에 여러 요소가 동시에 얽히기 때문이에요.
20대의 고민은 대개 한 가지 요소로 풀려요. 독립할까 부모님 댁에 남을까, 월급에서 얼마를 저축할까, 학자금 대출을 어떻게 갚을까 — 주로 돈공부 하나면 답이 나오는 질문들이죠.
그런데 30대 중후반으로 가면 벌써 달라져요. 결혼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전세로 갈까 월세로 갈까 매매를 할까, 아이를 낳을 타이밍과 그 비용까지 — 여기서부터 금리(경제)와 현금흐름(돈)과 대출 전략(투자)이 한 번에 얽히기 시작해요.
40~50대가 되면 아예 따로 뗄 수가 없어져요. 언제 은퇴할지, 은퇴자금은 얼마나 필요한지, 자녀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할지 — 그리고 결혼하지 않았거나 자녀가 없어도, 부모님의 병원비와 용돈, 요양비를 감당하는 문제는 똑같이 찾아옵니다. 세 가지 공부가 따로 존재할 수 없는 지점인 거예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20대엔 다른 나이대에 비해 좀 더 단순한 돈 문제가 30대의 결혼·주거 결정부터 이미 서서히 겹치기 시작해서 40~50대에 걸쳐 점점 빠르게 하나로 붙는 거예요. 이 흐름은 다음에 이어질 ‘머니 로드맵’ 시리즈에서 나이대별로 더 자세히 풀어보려고 해요.
20대(독립·저축) --> 30대(결혼·주거·출산) --> 40~50대(은퇴·자녀 등록금·부모 부양)의 고민에 따라 돈, 경제, 투자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게 힘들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이가 들 수록 돈이 더 어려워지는 이유는 삶이 더 복잡해지고 생각해야 할 요소들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입니다. 경제공부, 돈공부, 투자공부를 다 해야하다 보니 돈이 더 복잡하고 힘들게 느껴지는지 십분 이해가되더라구요.
재테크, 투자공부를 다시 배우며 가장 크게 부끄러웠던 지점이 있어요. 제가 컨설팅하는 사업가분들께 늘 강조하는 게 하나 있거든요. 사업이 무너지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대개 유동자금의 흐름이 어딘가에서 끊기기 때문이라고요. 그래서 청구와 정산, 완충 자금까지 전체 흐름이 끊기지 않는 시스템을 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항상 말씀드려요. 제 사업도 그렇게 지어왔고요 — 고객이 결제를 놓치지 않도록 자동 청구일을 정해뒀고, 상담이 끝나면 정해진 순서대로 후속 메일이 나가고,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누가 봐도 똑같이 굴러가도록 매뉴얼로 정리돼 있어요. ‘한 번 잘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시스템’으로요.
그런데 정작 제 개인의 결제 시스템은요? 카드값은 매달 얼마가 나갈지 예측이 안 됐고, 저축은 ‘남으면 하는 것’이었고, 소비는 그날의 기분이 정했습니다. 남의 사업에는 유동성이 끊기지 않는 시스템을 지어드리면서, 제 삶에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돈을 쓰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이게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더라고요. 주변을 둘러보면, 월 소득은 제법 높은데도 정작 목돈이 필요한 순간엔 이 통장 저 통장을 뒤져보며 “어? 왜 돈이 없지? “라고 묻는 분들이 참 많았어요. 버는 데만 집중하느라, 정작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이해하고 통제하는 일에는 소홀했던 거죠. M&A 전문가 이면서 다른 회사의 전략과 자금추적은 아주 치밀하게 했지만 정작 자신의 자금은 추적하지 못했다는 분도 만나며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이 상황을 생각하니 중이 자기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문뜩 생각났습니다.)
돈을 받고 일을 하니 철저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정작 내 삶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던겁니다. 사업하듯 내 삶의 돈의 흐름을 들여다보지 못했음을 인정하게 되니 그 과정에서 놓친 게 생각보다 많다는 걸, 저도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만난 고객분들은 나이도, 직업도, 사는 나라도 다르지만 — 제대로 된 돈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만은 다들 똑같더라고요. 돈을 벌고 관리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지만, 결국 돈 문제는 스스로 정면으로 마주해야 풀리는 문제라는 것도요.
그래서 저는 돈공부의 첫 단추를 이렇게 정의하게 됐어요.
돈이 왜, 그리고 어디로 빠져나갔고 어떻게 들어왔는지 관찰하여 현금흐름을 스스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
학구열에 불타 경제학 개론을 혼자 공부해 보려 했던 적이 있어요. 너무 지루해서 마치지는 못했습니다만 첫 시간에 배우는 개념은 사실 금리가 아니라 ‘희소성과 기회비용’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경제공부 콘텐츠 — 재테크 입문서, 경제 유튜브, 신문 칼럼 — 는 좀 더 실용적으로 접근해서, 이론보다 금리·인플레이션·환율부터 먼저 짚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론의 순서와 실전의 순서가 다른 거죠.
실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살짝 볼까요 ?
금리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 금리는 딱 하나의 숫자로 대출이자, 예금이자, 집값, 주식 가치까지 거의 모든 걸 동시에 움직이고, 한국은행이 몇 주에 한 번씩 날짜를 정해 발표하는 눈에 보이는 뉴스이기도 하거든요. 희소성이나 기회비용 같은 개념은 맞는 말이지만 추상적인데, 금리는 바로 다음 달 내 대출이자로 연결되니 훨씬 손에 잡혀요.
한 줄로 정의하면, 금리는 ‘돈의 가치’보다는 ‘돈에 붙는 가격표’에 가까워요 —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대가로 치르는 값이요. 삶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거죠.
다만, 개념을 모르고 실전만 하면 방향을 잡고 왜 하는지를 모르고 누군가가 말하는 걸 따라가기만 한다는 단점이 있더라구요. 손에 잡히는 돈공부를 하면서, 경제공부로 보는 눈을 키우고, 투자공부를 실전에서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더라구요. 여기서 '왜'라는 중심 개념이 들어가면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점으로 가장 현실적으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경제공부의 첫 단추가 이론적으로는 ‘세상의 한정된 자원이 왜, 어떻게 배분되는지’지만 현실에서는 ‘그 가격표가 왜 움직이는지’로 시작한다면, 돈공부의 첫 단추는 그 실전 감각을 내 삶 크기로 줄여 ‘내 돈이 왜, 어디로 배분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30대의 저는 모든 게 속도전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계약, 매출, 다음 시즌 — 멈추면 뒤처진다는 감각이 늘 저를 몰아붙였어요. 그런데 진짜 부는 정반대의 리듬으로 쌓이더라고요. 시간을 적으로 여기고 서두르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40대에 들어 처음으로 시간을 아군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무언가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쌓임’은 결국 큰 결정 하나가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만들더라고요. 오늘 하나를 사고 마는 소비, 오늘 하루 미루고 마는 저축, 오늘 한 번 흔들리고 마는 감정 — 이 사소한 것들이 이자처럼 매일 붙어서 몇 년 뒤의 제 모습을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자산이 복리로 불어나기 훨씬 전에, 잘못된 소비 습관이 먼저 복리로 불어나고 있었던 거예요.
속도는 소비하고, 리듬은 축적합니다. 그리고 그 리듬을 만드는 건 재능이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작은 습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재테크를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수행처럼 대하려고 합니다. 시장을 읽는 눈도 중요하지만, 흔들릴 수 있는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절제가 쌓일 때 부가 쌓이기 시작하니까요.
돈은 스스로 그 어떤 가치도 갖지 않습니다. 돈의 본질은 사실 텅 빈자리에요.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돈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더군요. 제가 조급하면 조급함을, 증명하려 들면 허영을,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까지 투명하게 그대로 비춰냈으니까요.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지의 죄수들을 그린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돈을 “주조된 자유”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런 자유가 없던 감옥 안에서도 돈만 있으면 빵 한 조각, 담배 한 개비의 자유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는 거죠. '주조된'이라는 건 동전처럼 찍어냈다는 뜻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자유'라는 추상적 개념을 쥐고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돈이라는 거죠.
제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이면 그 자유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씁니다. 반대로 돈에게 고용되었다면, 그 자유의 주인은 제가 아니라 제 안의 결핍과 두려움이 대신 쥐고 쓰는 거에요. 자유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완벽히 종속된 상태인 셈이죠. 그 자유의 모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결국 각자가 그 빈자리에 채워 넣는 것이겠고요.
수많은 명저들이 돈을 정의하는 방식도 결국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김승호 회장은 돈을 '인격체'로, 유발 하라리는 '돈이란 인류가 함께 합의한 신뢰의 시스템'으로, 모건 하우절은 '자유의 도구'로 풀었고,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돈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순수한 척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각기 다른 시선 같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돈에는 고정된 본질이 없으며, 그 빈 공간을 채우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돈을 대하는 '사람'이라는 것.
경제 공부로 지도를 읽고, 돈 공부로 나침반을 쥐고, 투자 공부로 걸음을 옮기는 법을 깨닫고 나니, 재테크의 끝에는 결국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 하나만 남았습니다.
"나는 돈을 고용한 사람인가, 돈에게 고용된 사람인가?"
이 질문은 시장을 몰라서 답할 수 없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시장을 다 알고 나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거예요.
결국, 돈이라는 텅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우리가 돈을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고유한 색상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빈틈없는 통제와 규율의 단단한 색으로, 어떤 사람은 계산된 리스크를 즐기는 강렬한 색으로, 또 어떤 사람은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차가운 색이나 삶의 조화를 중시하는 따뜻한 색으로 그 공간을 칠합니다. 그리고 빛이 강할수록 짙어지는 그림자처럼, 그 색깔의 이면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병리적인 부작용(Money Disorder)도 숨어 있습니다.
돈이라는 거울은 과연 당신의 모습을 어떤 색으로 비추고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우리의 통장을 지배하고 있는 ‘4가지 머니 컬러’와 그 뒤에 숨겨진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