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39번의 이사가 가르쳐준 상위 0.1%의 사고
10개국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 행운은 거창한 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갈망이 시작점이었다.
금수저였기 때문도, 남들보다 특출 나게 똑똑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망과 어떤 일이 주어지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로 매 순간을 채웠을 뿐이다. 장대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눈앞에 찾아오는 기회에 기꺼이 "Yes"라고 응답했다. 그 응답들이 모여 26년 동안 10개국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삶을 만들었다.
물론 낯선 세계로의 진입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장된 것 하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늘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내게는 불안의 무게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최고로 잘 해내고 싶다는 절실함이 더 컸다. 결국 해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내가 < 본찰력 : 본질을 꿰뚫는 사고법>를 연재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명확하다. 12년 간의 온라인 게임 생활과 7년의 사업가적 분투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상위 0.1% 엘리트들의 통찰'이었기 때문이다. 성공과 행복을 모두 거머쥔 그들을 직접 만나며 독특한 사고 구조를 목격했다. 현재 성공을 향해 달리느라 방향감각을 읽은 누군가가 있다면, 이들의 사고법을 통해 실질적인 가치와 영감을 얻길 바란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사업가다.
자신의 일과 삶을 경영하고,
리더로 성장하는 업력을
끊임없이 키워나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6년간 10개국을 유랑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있었다. 해군 장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5개 도시를 거치며 총 22번 이사를 다녔다. 잦은 이사로 인해 '움직이는 삶'이 자연스레 학습되었고, 환경이 바뀌는 것을 위기가 아닌 새로운 데이터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이 생겼다. 그것이 내 본찰력의 첫 번째 자산이었다.
캐나다에서 핀란드까지,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머물며 일하고 공부했다. 그 시간은 단순히 경력을 쌓는 과정이 아니라, 각 국가와 산업의 '보이지 않는 핵심'을 포착하는 훈련 과정이었다.
영어영문학과 응용생물학을 복수 전공했다. 졸업 후 온라인 게임을 구할 때 어학연수로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갔다. 시작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1998년, 1999년 (벌써 26년 전이라니!)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있으며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의사가 되겠어!‘라는 꿈을 키우며 의과대를 들어가 버려 했으나 레지던트 3년 차의 삶을 보고 금방 의사가 되는 꿈을 접었다. 캐나다 대학으로의 재입학을 위해 캐나다에서 치를 수능시험을 준비하던 차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아니다는 생각이 깊어져 도중하차 한국으로 들어왔다. 내가 진짜 가고 싶은 길을 묻기 시작했다.
나는 X재팬의 ‘Endless Rain’을 즐겨 듣거나 너바나, 건즈 앤 로지즈 같은 헤비메탈을 들으러 다녔다. 슬롯에 대한 반항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기엔 20대 초의 나는 좀 소심했던 편이었다. 말 잘 듣고 차분해지만 밝고 유쾌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영문학, 법학, 경제관련된 과목을 들으면서 그 당시 일본의 문화와 경제 수준을 목격했다. 신세계를 향한 호기심,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다는 강열한 욕망이 생겼다.
’어 차피 다 어려워. 이왕이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자!‘ 그래서 선택한 패션 디자인 전공.
너무나 하고 싶었고 관심이 많았던 분야다. 엄마 친구 딸이 패션을 전공하고 너무나 힘들어하던 모습을 보고 패션 디자인학과를 가는 것을 반대하셨던 터라 포기했던 과였다. '힘들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강력한 결단이었다. 이 결단은 캐나다와 일본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처음에 반대하셨던 부모님도 내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유학을 가겠다고 미친 듯이 일을 하며 돈을 모으는 것을 지켜보셨다. 영국 대학 면접을 보고 합격까지 한 모습을 보시곤 '그렇게 원한다면 가거라.'라고 말씀하시던 기억 여전히 선하다. 어려서 몰랐던 그때, 부모님께서 엄청난 고생을 하셨겠구나! 를 이제야 이해한다.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셔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무가내로 일하며 돈을 모았고 영국대학에 합격까지 했다. 결국 나의 똥고집은 2번째 대학 입학으로 이끌었다.
첫 온라인 게임은 런던의 디자인 컨설팅 & 패션 트렌드 예측 분석 회사다. Breaux Design & Trend Forcasting Consultancy. 제품 개발, 기획, 판매의 근간이 되는 전략적 데이터 분석과 트렌드 예측의 기초를 닦았다.
이탈리아의 모든 것이 좋았다. 특히 로마와 프로방스 지역에 살면서 나는 멋과 여유가 있는 삶을 흡수했다. 도시 구석구석이 박물관 같았고 그런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유였고 행복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일해 모아두었던 돈으로 진정한 ’ 로마에서의 휴일‘을 만끽했다. 3개월 동안 로마에 주거지를 잡아놓고 여행을 다녔다. 친언니들 2명도 로마로 날아와 함께 지냈다. 난 스펀지처럼 이탈리아의 멋과 삶의 여유에 관한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게 이탈리아는 방문하기에는 좋지만 살기에는 불편한 게 너무 많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내게 맞는 삶의 터전을 선별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뉴욕에서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왔다. Ralsey Group은 자체 브랜드도 가지고 있었지만 메이시(Macy's) 백화점, 노드스트럼(Nordstrom), 화이트 스테그(White Stag), 등 규모가 큰 회사들에게 디자인을 제공하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이기도 했었다.
내 능력의 흔적 발견 한 첫 단추를 발견하게 된 곳이다. 다이렉터 어시스턴트 역할을 하며 회사 내 체계적인 디자인 시스템 세팅의 재능을 발견했다. 복잡한 부서 간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전체적인 체계를 잡는 '구조적 사고'의 힘을 깨달았다.
Ralsey Group이 홍콩의 메가통급 글로벌 그룹 Li&Fung에 합병되었다. 미국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홍콩에서 일을 했다. 뉴욕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디자인을 했고, 홍콩에서 샘플을 제작하고, 트렌드 분석 자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검수 작업을 했다. 디자인 - 제작 - 샘플링 - 생산의 전 과정을 공장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현실 가능한 디자인과 효율적인 프로세스의 상관관계를 꿰뚫는 법을 배웠다.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올바른 순서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디자인 의도를 반영해 만들 수 있게 해 주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6개월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정치와 위계질서가 중심인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 '본질을 잃은 시스템'의 위태로움을 목격했다. 산업의 특징이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던 한국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한국에서의 회사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일이 목적이 아닌 파워게임이 내겐 버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걸 견뎌내고 일하는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연매출 6000억의 42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패션 회사 STL (Sociedad Textil Lonia). CH Carolina Herrera 그리고 Purificación de Garcia 브랜드가 있다. 동양인 최초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며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억대 연봉과 함께 실력의 가치를 증명했지만, 동시에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끊임없는 러브콜에 오만함이라는 함정도 경험했다.
첫 패션 리테일 사업인' Arium Collection'을 창업했다. 5년 동안 영혼을 갈아 넣으며 가장 화려한 성취와 가장 어두운 절망을 동시에 맛본 시기다. 8개의 럭셔리 백화점 및 쇼핑센터에 입점하고 12개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성장이 급격히 빨랐던 만큼 성장통도 컸다.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현재 이곳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컨설팅과 CEO 멘토링을 제공하며, '본찰력 사고'를 기반으로 사업가들의 경영 마인드를 깨우고 있다.
한국과 핀란드 및 스페인을 진출하고자 하는 회사들을 연결해 주는 비즈니스 컨설팅과 컨시어즈 서비스를 제공한다. 패션 산업에서의 18년 경력과 28년째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글로벌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지금은 원하는 매출을 만들지 못하고 계신 사업가분들에게 비즈니스 코칭과 CEO 멘토링을 한다.
본찰력 사고를 기반으로 사업 체계를 갖추고 경영하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를 길러드린다. 10개국에서 일하며 얻은 문화, 경제,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해외진출을 하고 싶은 고객사들을 도와드린다. 나는 사업을 통해 자신 최고의 모습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의미 있고, 세상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자신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성취감이 가득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베스트셀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과 가족, 슬롯, 국가를 위한 헌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성장통은 지독했다. 싱가포르 사업 중 겪은 팬데믹과 파트너와의 갈등은 내 삶에 강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극심한 우울증과 남편의 소송이 겹친 핀란드에서의 초기 9개월은 실타래 속에 갇힌 듯 막막했다.
하지만 그 '멈춤'의 시간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쳇바퀴를 돌던 삶을 멈추고 나서야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행복한 부를 이루고 싶다는 본질적인 갈망이 깨어났다.
그때부터 성공과 행복을 함께 쥔 글로벌 사업가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이 성공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과 그들만이 가진 독특한 사고의 틀을 연구했다.
글로벌 17인의 엘리트들이 공유하는 이 생각법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본찰력은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고 급소를 타격하는 실전 도구다. 10개국 현장에서 벼려낸 나의 경험과 그들의 인사이트가 만난 이 기록을 통해, 여러분도 자신만의 '보이지 않는 기회'를 발견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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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로 10개국을 유랑하며 나이대별로 저 자신을 깊게 분석하고 이해히는 글을 적어보았어요.
본찰력 사고를 가지게 된 문화 간의 충돌-해체-재조립의 실제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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