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고래> - 어느 페이지의 묘사

문단과 비문단

a992c8b5fac07bea9a641d39dc947011.jpg邦乔彦 (bang qiao yan)의 그림

한 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야 읽어보는 천명관 작가의 <고래>. 장항준 감독과의 에피소드도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쓰다가 문단을 통해 먼저 빛을 본 경우. 이야기를 참 재밌게 쓴다.


디킨스가 그런 말을 했다. 좋은 작가란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 소설이 그렇다. 지금 페이지를 읽으면서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다.


지구에 한껏 가까워진 태양이 무쇠라도 녹여버릴 것처럼 뜨겁게 세상을 달궈대고 있는 여름 한낮. ... 그중에서도 특히 개망초는 성곽을 포위한 병사들처럼 늘 공장 둘레를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다가 ...


그런데 이 부분이 약간 겉도는 느낌이다. 이 소설은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시나리오만 쓰다가 몇 년치 이상문학상을 다 읽고서 소설을 썼단다. 그러니 문단이 원하는 문체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겠지. 이 부분이 그런 흔적인 것 같다.

邦乔彦 (bang qiao yan)의 그림

저런 묘사가 들어가야 문단의 문장이라는 인식이 있던 시대가 있었다.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어보면 첫 페이지에 마을의 전경을 묘사하는데, 이 부분이 현대소설의 모범이 되었다는 평이 있다. 그 이후로 문단의 소설들은 묘사가 한 요소인 듯한 느낌도 있지.


그런데 요즘 젊은 문인들은 그렇지도 않다. 실상 작년부터 입소문으로만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모순>도 묘사에 그렇게 치중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문단에 도전을 했던 입장에서, 그 문체가 체득이 된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경우도 아닌데 자꾸 문단의 문체를 흉내 내려는 경우가 있다. 감각적으로 쓴다기 보단 강박적으로 쓰는 듯한, 문체보다도 문법을 걱정해야 하는 경우.


나도 지겹도록 공모전에 떨어졌거든.

어차피 그런 문체는 문단에 맡겨야 된다. 당신부터가 그렇지 않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자인지, 온라인카지노 대상 수상자인지에 따라 기대하는 문체가 다르잖아.


문단의 문체를 향유하려면, 독자들은 문단의 글을 선택하지 않겠어? 출판사 운영하면서 글을 쓰는 나도, 그런 경우엔 문학동네와 민음사 소설을 집어든다.


문단이 아닌 경우엔, 비문단다운 문체로 승부를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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