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웅웅거리며 차가운 공기를 뿜어내던 에어컨을 끄고, 가만히 창문을 활짝 밀어 열어본다. 방 안을 맴돌던 인공적인 냉기가 스르르 빠져나간 자리에, 어느새 생각보다 덥지 않은 보드라운 밤바람이 살갗을 기분 좋게 스치며 밀려든다. 창틀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참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가만히 깊은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어둠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창밖에서는 작은 풀벌레들이 저마다 맑은 음표를 띄워 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낮 동안 세상이 내뿜던 바쁜 소음들이 모두 잠든 시간, 제 몫의 목소리로 밤을 채워가는 그 조그맣고 투명한 노랫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닿아온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하루 내내 팽팽하게 곤두서 있던 마음의 결이 한결 부드럽게 풀려나간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문턱 사이, 계절이 소리 없이 자리를 바꾸어가는 이 애틋한 시간. 창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미처 몰랐을 맑은 공기와 밤의 소리가 닫혀 있던 마음에 스미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생각들이 저절로 단정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굳이 무언가를 애써 채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이 건네는 이 소박한 리듬에 기대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 고맙고 아늑하다.
열린 창가에 편안하게 기대어 밤이 들려주는 다정한 연주에 귀를 맡겨본다. 서늘한 바람결과 풀벌레 소리가 가득 차오른 오늘 밤은, 무거운 걱정은 다 내려놓고 더없이 달콤하고 포근한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