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여백이 주는 평온

byLiA

한때는 모든 관계가 뜨거워야 온전하다고 믿었다.

숨김없이 전부를 쏟아붓고 쉼 없이 서로의 틈을 메워야만 비로소 깊은 사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나치게 뜨거운 열기는 끝내 서로를 지치게 만들고 만다.

벅차게 타오르던 온도는 사소한 바람 하나에도 쉬이 식어버리고,

너무 가깝게 맞닿아 있던 마음들은 작은 모서리에도 서로를 베이게 했다.


상대의 표정 하나, 말투의 미세한 변화에 온 마음이 흔들리던 날들이 있었다.

나를 깎아내서라도 상대의 틈을 채워주려 애썼고, 내 안의 빈자리를 타인의 온기로 메우려 조급해했다.

하지만 내 안의 중심이 흔들리면 상대에게 가닿는 열기도 과해지거나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가을의 서늘함이 편안한 이유는,

무언가를 억지로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각자의 숨이 통할 수 있는 서늘한 바람의 길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알려고 다그치지 않고,

그저 상대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일.


결국 적당한 온도로 다정해진다는 건

타인을 향해 있던 시선의 절반을 다시 내 안으로 돌려놓는 일에서 시작한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기꺼이 즐기고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은 타인에게 과도한 기대를 얹지 않는다.


내 삶의 속도를 담담히 지키며 내 안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고 있을 때,

밖으로 건네는 다정함 역시 은근하고 깊은 온도를 품게 된다.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그 담담한 거리 속에서 마음은 비로소 오래도록 평온하다.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누군가에게 가장 편안한 온도의 사람이 되어주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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