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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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 세계에서 약 50만 명의 사람들이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찾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대부분은 종교적 의미를 품고 이곳을 방문한다. 이곳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기 814년경,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의 콤포스텔라에서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국왕 알폰소 2세는 직접 그곳까지 걸어가 이를 확인했다. 이것이 최초의 순례로 기록되었고, 오늘날 ‘프리미티보 길(최초의 길)’이라 불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11세기에 교회는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속죄의 의미로 산티아고까지 걸어갔다 오도록 권했다. 그때부터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등 여러 지역에서 출발하는 길을 따라 성당과 병원, 숙소가 생겨났고, 이것들은 오늘날 산티아고 순례길의 기반이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짧게는 약 240km에서 길게는 1000km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그러나 이 길은 단순히 걷는 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에게는 종교적 수행의 길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종교와 상관없이 삶의 쉼표를 찾는 길이 된다. 사람들은 하루에 약 20~25km를 걸으며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난다. 길 위에서는 먹고, 걷고, 자는 것만이 중요해지고 그 단순함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는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길이 있다. 나는 그 길을 ‘아티아고 순례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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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결혼한 나는 둘째 아이가 태어난 1994년에 아차산 자락에 위치한 광장동으로 이사를 갔다. 집 앞에는 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아차산이 자리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자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도 나는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돈을 벌고 슬롯생활을 하느라 바빴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했고, 주말이면 피곤하다며 잠으로 시간을 보냈다. 자연을 즐길 여유도,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그 무렵 대전에 계시던 아버지가 병환으로 서울로 올라오셨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아버지는 9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술 당일,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가신 뒤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나와 형을 병원 안의 작은 법당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부처님께 아버지의 수술이 잘 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법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절을 하며 아버지의 무사함을 빌었다. 그날이 부처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그 이후 나는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아차산에 있는 영화사에 올라가 등을 달고 대웅전에 앉아 가족의 건강을 빌기 시작했다. 무신론자였던 나는 처음에는 법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처님과 조금씩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거의 매주 아차산을 오르게 되었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자연스럽게 영화사에 들러 대웅전과 미륵전에 앉아 부처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날은 소원을 빌었고, 어떤 날은 힘든 일을 하소연했다. 또 어떤 날은 내 바람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서운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은 그저 아무 말씀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차산 정상 부근에 있는 작은 절 하나를 발견했다. 대성암이라는 절이었는데 열 평 남짓한 작은 법당 하나가 전부인 소박한 절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의 풍경은 그야말로 천하절경이었다. 훗날 이 절은 범굴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범굴사의 부처님은 영화사의 부처님과는 또 다른 위안을 주셨다. 영화사의 부처님과 나누는 대화가 조금 더 엄숙하고 진지한 느낌이었다면, 범굴사의 부처님과의 대화는 훨씬 더 친근하고 일상적인 느낌이었다.

그 이후 나의 산행에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루트가 생겼다. 아차산을 오르는 길에 먼저 범굴사에 들러 부처님께 반가운 인사를 드리고,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영화사에 들러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나는 이 길을 걸었다. 이 길은 나에게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위안을 동시에 주었다.

그동안 아버지가 다시 큰 수술을 받으셨을 때 나는 평생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완쾌를 기도했다.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치를 때마다 그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원했고, 회사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그것을 이겨낼 힘을 달라고 빌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부탁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원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이었고, 내가 결국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부처님이 이끌어 주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2016년 나는 광장동을 떠나 자양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집 앞에 뚝섬 한강 공원이 있어 여전히 한강은 가까이 있었지만 아차산은 약 10km나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예전처럼 자주 아차산을 오를 수는 없었다. 영화사와 범굴사의 부처님과 나누던 대화도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그저 1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 차를 타고 찾아뵙는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아차산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오면 어떨까?”

집에서 출발해 한강을 따라 걸어 아차산까지 가 범굴사와 영화사를 들러 부처님을 뵙고 오는 것.

그렇게 시작된 길이 바로 나의 아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집에서 나와 뚝섬 한강 공원에서 출발해 잠실대교를 거쳐 잠실철교를 지나 올림픽대교를 지나고 천호대교를 지나서 광진교로 나와 아차산에 올라서 고구려정을 거쳐 범굴사에서 부처님과 대화를 하고 아차산 정상을 거쳐 하산하여 영화사에서 다시 부처님과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여정은 마치 나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과도 같은 순례길이다. 우연히도 이 순례길은 총 23km 정도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1일 평균거리와도 거의 일치한다.


이 길은 나에게 삶의 활력소가 된다. 집을 나서자마자 마주하는 한강의 탁 트인 풍경은 신선한 청량감을 선물해 주고,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피어나는 꽃과 나무들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차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서울과 한강의 풍경은 마음속의 시름을 모두 씻어낸다.


영화사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륵전으로 오르는 백팔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른다. 올라가며 백팔 개의 공덕을 쌓고, 다시 내려오며 백팔 개의 번뇌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속세의 길로 돌아온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한강의 석양, 그 석양이 물결 위에서 반짝이는 순간 나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떤 날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어떤 날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걷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며 감상에 젖기도 한다. 이 길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길이다.

그렇게 나의 아티아고 순례길은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이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운동을 위해서도, 풍경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가 있던 그날, 처음으로 두 손을 모았던 순간부터 내 삶 어딘가에 작은 순례가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강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아차산 능선 위로 햇살이 내려앉는 순간이면 마치 누군가가 조용히 내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길을 걸으며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폴 앵커의 파파나 아버지가 평소 좋아 하시던 아빠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면 자동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트 모양의 구름을 보게 되면 또 자동적으로 눈물을 흘린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내가 보고 싶어서 오실 때는 내가 알아볼 수 있게 꼭 하트 구름으로 오시라고 아버지에게 말씀 드렸기 때문이다.


아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참 많이 울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 나서 울고, 90이 되신 어머니 건강 걱정에 울고,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벅차서 또 울고... 다행히 사람들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내가 울면서 걷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원 없이 울고 싶은 만큼 울면서 이 길을 걷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누군가는 스페인까지 가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지만,

나에게는 집을 나서 한강을 지나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이 길이 바로 나의 순례길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산티아고. 나는 그 길을 아티아고 순례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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