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더미에서 어제를 찾았습니다.

앤 카슨의 노벨 문학상이 발표된 다음날

bysomewhen

한로를 지났습니다.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앤 카슨이 선정됐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꽤 오래전 일 같습니다. 불과 2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말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시를 제외하고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제게는 고된 일이었다. 작품에 담긴 타인의 서사를 머릿속에서 재현하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읽는 동안 작가가 쓴 이야기를 작가의 의도에 맞게 잘 읽어 나가고 있는지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작가가 글로 쌓아 올린 미지의 벽과 바닥을 재현하고, 그 속에 인물의 움직임을 상상한 다음 참과 거짓으로 나뉜 이해(understanding)로 연결시키기 위해 작가의 세계를 집중해서 좇는 일이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뿌옇게 되어 기억이 희미해진 김승옥, 나츠메 소세키, 밀란 쿤데라, 조지 오웰, 헤르만 헤세의 글을 제법 성실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모으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글을 그들의 세계 이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이따금씩 끌리는 소설바카라을 사서 읽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다만, 시에는 머릿속의 한계 없는 재현의 영역을 그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유로워서 받아들이기에는 더 낫다고 생각해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문학 소식은 갱신해야 할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습니다. 앤 카슨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언젠가 사두었던 그의 바카라이 떠오른 정도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플레인 워터>라는 바카라이었습니다. 그 바카라은 읽었는지, 읽다가 말았는지, 새 바카라처럼 주름 없는 상태 그대로 사유의 흐름을 알 수 없는 바카라들의 뭉치에 끼어 있었습니다. 왜 앤 카슨의 바카라을, 그것도 이 바카라을 사기로 결정했는지 떠올리려고 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수상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쌓아두고 방치해 둔 욕망의 흔적에 서글퍼졌습니다. 마음을 오래 둘 생각이 없었다면, 순간의 욕망을 조금 거두고 사랑하고 있는 것들에 정성을 보탤 걸,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잡지 못할 것들을 좇느라 오늘에 전력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서글퍼졌던 것입니다.


쌓인 바카라 속에서 그의 바카라을 꺼냈습니다. 어제 쌓아 올린 방치한 오늘을 조금은 정리하며 마음을 끌어 모았습니다. 깊은 마음으로 애정을 두고 삶을 채울 어떤 것들을 무겁게 사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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