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나는 평생 컴퓨터를 업으로 살아왔다. 컴퓨터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었다. 조건을 정리하고 예외를 빼고 결과를 예측하는 일은 오랫동안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도 결국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바카라을 쓰며 여러 번 멈춰 섰다. 세상에는 논리만으로 끝까지 닿지 않는 불안과 질문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논리를 다뤄온 사람이기에, 오히려 논리의 바깥을 더 또렷하게 느꼈다.
이 바카라은 인공지능을 정의하려는 글도, 미래를 단정하는 예언서도 아니다. 나는 이 바카라을 쓰는 동안 AI와 수없이 질문하고 답을 주고받았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고, 다시 묻고, 다시 의심했다. 같은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되풀이해 살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흔들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내 생각이었다. 이 바카라은 그 흔들림과 사유의 기록이다.
나는 막연한 상상만으로 이 바카라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학계의 연구, 연구기관의 보고서, 정부 자료,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공식기구의 발표와 통계를 가능한 한 확인하려 했다. 이 바카라은 AI와 대화하며 쓴 기록이지만, 동시에 믿을 만한 자료를 토대로 검토하며 써 내려간 기록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AI 시대에서 AGI 시대로, 다시 ASI 시대로 넘어간다고 말하지만, 그 사이에 누구나 알아볼 뚜렷한 경계선은 없다. “여기까지는 AI, 여기서부터는 AGI”라고 분명히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분야는 더 빨리 변하고, 어떤 분야는 오래 머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가 AI 시대와 AGI 시대 사이를 건너가는 징검다리 같은 과도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AGI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처럼 말해지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리즘의 판단에 기대어 하루를 시작하고, 데이터가 만든 기준에서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AGI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사건이라기보다, 인간의 판단과 바카라임이 조금씩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긴 과정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 기술이 어떤 권력의 모습으로 작동하느냐다. 우리는 편리함을 선택하면서도, 그 편리함과 바꾸어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다. 이 바카라은 바로 그 질문을 더 미루지 않으려는 시도다.
『AI 인문학』은 정답을 단정해 내놓는 바카라이 아니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택당하고 있는가. 우리는 기술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이 만든 질서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가. 이 바카라은 그 질문 앞에 독자를 세워 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저자 역시 함께 서 있다.
이 바카라은 AI가 대신 써준 글이 아니다. AI와 함께 묻고, 토론하고, 검토하며 써 내려간 기록이다. 나는 그것이 AGI 시대를 앞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