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환대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주던 아이들

by연두




과외하는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어쩌다 버스를 탔고 주로 걸어 다녔다. 혼자 걸어가며 이것저것 생각에 잠기는 것이 좋았다. 물론 버스비를 아끼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자매의 부모님은 일하러 가셔서 집에 늘 안 계셨다. 낮 동안엔 주로 아이들끼리만 생활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희들끼리 공부하고 먹고 놀고 쉬었다. 안 그래도 넓은 집은 늘 휑해 보였다. 자매는 오랫동안 그렇게 생활한 듯 익숙해 보였다.

언니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여드름으로 울긋불긋한 피부에 발그레한 볼, 실핀 두 개를 가지고 한쪽으로 딱 고정해 둔 앞머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앞머리는 흐트러질 일이 절대 없을 만큼 잘 붙어있건만,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머리가 잘 고정되어 있는지 수시로 만져보곤 했다. 그러다 미심쩍다 생각이 들었는지 바카라상 앞 귀퉁이에 항상 대기 중인 손거울에 머리를 비추어보는 것이었다.


아이는 수학을 어려워했다. 학원에 다녀봤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았고, 따라가기도 힘들었다고. 그게 나와 과외로 인연을 맺게 된 이유였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만났다.

동생은 그 옆에서 숙제를 했다. 부모님께서는, 언니가 수업을 받을 동안 동생이 옆 바카라상에서 숙제를 하도록 지도만 해달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6학년인 동생은 언니와 많이 달랐다. 언니가 새침데기에 가깝다면 동생은 말괄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한 것도 많아서 늘 내게 먼저 말을 시키곤 했다. 질문 중 대부분은 숙제나 공부와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남자친구 있어요? 대학생들은 뭐 먹으러 가요? 아이돌 누구 좋아해요? 미팅 많이 해봤어요? 이런 것들이었다. 말없이 앉아있다가 어쩌다가 피식하고 수줍게 웃는 언니와는 달랐다. 그래도 재밌는 얘기가 나오면 둘이 동시에 까르르 웃는 모습은 똑같았다. 영락없는 자매였다.

언니를 가르치고 있으면 가끔씩 동생은 숙제를 하다 말고 내 말을 가만히 듣곤 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질문했다. “왜 수학시간인데 자꾸 x, y라고 하는 거예요?” “F(x)가 뭐예요?” 간단히 임시방편의 설명을 해주고 나면 사실 언니와의 공부는 흐름이 끊겼다. 그래도 그 순수한 물음에 답을 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니는 그런 동생을 부끄러워하며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도 잠시 방해받게 된 것을 싫어하진 않는 눈치였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눈이 아주 커다랗고 길고 풍성한 웨이브의 헤어스타일의 여자들이 문제집 한쪽 귀퉁이에 나름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시험기간에는 다른 과목도 챙겨주었다. 나는 다음날 수업이 늦게 있는 날엔 저녁 늦게까지 함께 있었다. 내 과제를 가져와 같이 하면서 강제로 자습을 시키기도 했다.

한 번은 과외에 많이 늦은 날이었다. 그날따라 수업과 조모임이 길어졌다. 도저히 과외시간을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한 시간을 미뤘다. 그럼에도 결국 30분을 더 늦었다. 부모님께 연락을 해두고 부랴부랴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주택단지로 막 들어서는데 저 멀리 어렴풋이 누군가 바라보였다. 이미 어두워진 골목어귀에 쭈그려 앉아있는 그림자는 아이들이었다.


“세상에, 너네 왜 나와있어?”
“선생님이 안 와서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한참 기다렸잖아요.”
동생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엄마한테 얘기 못 들었어? 선생님 늦는다고 연락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다시 전화했을 땐 이미 아이들이 나와 있어서 더 늦는다고 한 연락은 못 들은 것이었다.
“무서운데 집에서 기다리지 왜 나왔어. 선생님이 어디로 올지도 모르잖아. 너네 선생님이랑 못 만났으면 어쩔뻔했어.”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다그치고 말았다. 내가 그 길로 올지 어떻게 알았으며 혹시나 평소처럼 걸어왔더라면 반대쪽에서 주택단지로 들어왔을 터였다. 그랬다면 어쩔뻔했을까. 순간 아득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우리 나가볼까라고 서로 말했고, 둘 다 그러자 해서 나오게 되었다고. 선생님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고. 기다리는 거 별로 안 힘들었다고.

집에 가는 길엔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다. 가끔 과외가 끝나고 같이 나와서 군것질 거리를 하나씩 사주곤 했던 곳이었다.
“너네 배 안 고파? 우리 뭐 먹을 거 사가지고 들어갈까?”
아이들은 신나 보였다. 언니는 나름 신중하게 초코가 든 과자를 골랐고, 그걸 본 동생은 고민하더니 언니와 같은 걸 골랐다.
“너, 언니 따라쟁이구나!”
평소에 동생이 강하게 부정하는 말이라 가끔 놀릴 때 사용하는데 그날따라 나는 짓궂어졌다. 우리 셋은 동시에 까르르 웃었다. 동생은 언제 울먹거렸나 싶은 얼굴로 덧니를 보이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자 이제 문제집 펴보자. 숙제는 해왔지?”
나는 다시 단호한 선생님이 되었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목구멍에 따뜻한 무언가가 걸리는 것 같았다.

저토록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부모님 말고 있었던가 싶었다. 온전히 누군가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나와 그이가 올 길을 더듬어 가는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받은 뜻밖의 순수한 환대에 목에 메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