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세월호 기념식 참가의 의미에 대한 단상
12년 전 나는 성남시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시청 광장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거리의 공기와 사람들의 움직임도 익숙하게 느껴지곤 했다. 봄이면 벚꽃이 흩날렸고, 여름이면 분수대 주변으로 아이들이 뛰어다녔으며, 겨울이면 퇴근길 시민들이 두꺼운 외투를 여미며 광장을 가로질렀다.
2015년 4월 17일 성남시는 시청 앞 잔디광장에 침몰한 세월호의 모습을 형상화한 '여기 배 한 척'이라는 이름의 추모 조형물을 설치했다. 그 후로 광장 곳곳에 노란 리본이 걸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과 슬픔이 자리 잡았다. 나는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 변화를 오래 바라볼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공간이 단순한 시청 앞 광장이 아니라 한 시대의 비극과 양심이 머무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 배 한 척‘이라는 조형물이 그 중심에 있었던 공간은 ‘세월호 기억의 정원’으로 명명되었다. 기억의 정원은 단순한 조형물이나 추모 시설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국가가 끝내 지켜내지 못한 생명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바카라감이 담겨 있었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간절한 다짐이 스며 있었다. 노란 리본 하나하나에는 이름조차 다 부르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걸려 있었고, 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며 그 앞에 머물곤 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어떤 사람은 손으로 리본을 매만졌으며, 또 어떤 사람은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정원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 침묵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바카라임에 대한 무거운 감정처럼 느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은 성남시청 광장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을 조성하고 유가족과 시민들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위조차 쉽사리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던 시기였고, 많은 정치인들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거나 거리를 두려 했다. 그러나 그는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했고, 행정의 이름으로 기억의 공간을 남기려 했다. 2015년 세월호 삼보일배 순례단이 성남시청을 찾았을 때도 그는 직접 이들을 맞이하며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잊지 않겠다. 죄송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세월호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시절의 분위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이 결코 편안하거나 안전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군가는 유가족들을 향해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고, 누군가는 이제 그만 잊으라고 이야기했으며, 또 누군가는 추모 자체를 정치적 행동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실제로 곳곳의 추모 현수막이 훼손되거나 철거되는 일도 있었고,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도 성남시청 광장의 노란 리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으며, 학생들은 작은 메모와 편지를 남겼고, 어떤 부모들은 오랫동안 정원 앞을 떠나지 못한 채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 모습은 단순한 추모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망각에 저항하려는 시민들의 양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광경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퇴근길이면 일부러 기억의 정원 앞으로 걸어가 보기도 했고, 늦은 밤 창문 너머로 불 꺼진 광장을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젖은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흔들렸고,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는 그 침묵이 더욱 깊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공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깊은 슬픔과 의미를 품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세월호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그 공간이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한 번의 해상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슬롯 전체에 던져진 거대한 질문이었다. 왜 구조는 그렇게 늦었는지, 왜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속에서 탈출하지 못했는지, 왜 국가는 국민을 지켜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과거를 향한 비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바카라임과 연결되어 있었다. 기억의 정원은 바로 그 질문을 잊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단순히 죽음을 애도하는 장소가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의 양심을 확인하고 인간의 존엄과 국가의 바카라임을 다시 생각하는 장소였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1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세월호 행사에 참석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그것 역시 중요한 일이며, 국가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기억의 자리에 함께한다는 것은 분명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내가 성남시청 광장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느꼈던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기억이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얻은 뒤에야 추모를 하는 시늉만 하거나 고통받는 유가족들의 진상조사 요구를 묵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하며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했다. 그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공격받던 시절에도 광장에 섰고, 유가족들의 손을 잡았으며, 시민들과 함께 슬픔을 견디려 했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한 인간이 시대의 비극 앞에서 보여준 태도와 바카라임감에 가까웠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비 오는 날 광장 위로 떨어지던 빗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던 노란 리본들, 그리고 추모 문구 앞에서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사람들의 표정을 말이다. 그것을 본 아이들은 “세월호가 뭐야?”라고 물었고,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긴 침묵 끝에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어떤 시민은 지나가다 잠시 두 손을 모았고, 또 어떤 시민은 말없이 리본 하나를 새로 걸어두고 떠났다. 그 장면들은 뉴스 화면에서 보던 어떤 추모의 현장보다 훨씬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기억은 거대한 구호 속에서 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잊지 않으려 애쓰는 반복된 행동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 광장에서 배웠다.
이것이 안산도 팽목항도 아닌 성남에 만들어진 세월호기억의 정원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의 목격자로서 현대통령이 하고 있는 국민 안전에 대한 정바카라들에 대한 진심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본다. 세월호를 가장 오래 기억한 지도자는 단순히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먼저 그 슬픔 앞에 멈춰 섰던 사람이다. 권력을 얻은 뒤에야 눈물을 흘리는 사람보다, 큰 권력이 없던 시절부터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 서 있던 사람이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이제 성남시청의 세월호 기억의 정원은 시간이 흘러 사라졌지만, 그 공간에 담겨 있던 마음과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지우려 했고, 누군가는 외면하려 했지만, 기억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12년 전 성남시청 광장을 다시 기억한다. 그리고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안전과 바카라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