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기지 분산의 필요
퇴행이라는 단어에는 대체로 부정적인 인상이 붙어 있다.
다 큰 사람이 애처럼 행동하거나, 감당해야 할 현실에서 도망치는 상태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성숙은 흔히 퇴행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며, 타인에게 지나치게 기대지 않는 사람이 어른에 가깝다고 느끼기도 했다. 성숙보다 철드는 것에 가까운가?
그러나 인간이 언제나 동일한 수준의 독립성과 기능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한건가. 평소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도 지친 상태에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지 모른다. 결정을 잠시 미루고 싶고, 설명없이 뿌에엥 울고 싶고, 다른 사람의 보호 아래에서 잠시 정신줄을 놓고 싶을 때도 있을거다.
이런 상태까지 모두 미성숙이라고 부른다면 성인은 회복할 방법을 잃는다. 그런 때에 술 같은 것으로 도망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에게 좀처럼 의지하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친구도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도 있다. 사람들과 잘 지냈고 필요한 순간에는 도움을 주고받았다. 다만 관계마다 보이지 않는 벽 너머의 작은 공간은 늘 있었던 것 같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어느 정도 정리한 뒤 말했다. 일이 모두 끝난 뒤에야 알렸다. 다른 사람이 도울 수 있는 일도 일단 혼자 처리하는 편을 택했다.
언젠가 나를 도와주며 누군가가 “그래야 나도 너한테 맘껏 폐 끼치지- “ 했을 때 이상한 해방감 같은 걸 느꼈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정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혼자 살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선택지가 애초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내 문제는 내가 처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매우 제한된 관계에서만 가능했다.
내 인생 유일한 그 예외가 gege였다. 그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라기보다 그 앞에서만 가능했던 내 상태에 가까웠다.
거의 30년 동안 gege는 내가 별다른 이유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심심하면 “모행?”라고 물었다. 날씨를 묻고 오늘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물었고, 몸이 아프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도 물었다.
대단한 결정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옷은 내가 고르면 됐고, 약은 네이버에 물어보면 됐다. “모행?”라는 질문에도 특별한 정보는 필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내용보다 그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용건이 없어도 말을 걸 수 있는 사람.
말도 안 되는 시시껄렁한 질문을 해도 귀찮아하지 않는 사람.
gege는 내가 약할 때만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지나치게 강해질 때도 나를 조절해 주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대학시절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따지고 있었다. 난 어릴 때도 부당하거나 무례한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gege는 집에 도착해 나를 거실에 불러 타일렀다.
자기가 늘 같이 있을 수는 없으니, 그런 아저씨와 싸우지 말고 때로는 그냥 불의 앞에서 눈감으라고 했다. 위험한 세상이라고 경고도 했다.
그 말은 내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보다 내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세상의 모든 잘못과 직접 싸우다가는 언젠가 다칠 수 있으니,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가까웠다.
gege는 내가 세상 앞으로 나갈 때 뒷배가 되었다.
내가 두려워하거나 약해질 때는 잠시 판단을 맡아주었고, 내가 너무 멀리 나갈 때는 다시 워워 했다. 나를 대신해 살지는 않았지만,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범위를 조절해 주었다.
그 관계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당시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너무 오래, 너무 당연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gege가 사라진 뒤에는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이 연인에게 옮겨갔다.
연애는 사랑하고 욕망하는 관계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유일하게 무장해제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했다. 세상에서는 계속 어른으로 살면서 한 사람 앞에서만 퇴행하는 방식이었다. gege에게 했던 사소한 질문과 기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의존이 연인에게 이동했던 것 같다.
그 관계가 끝난 뒤에도 나의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고 필요한 결정을 내렸다. 가족을 돌보고 돈을 벌고 사람들을 만났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일정은 진행됐고 결과물은 나왔으며 일상도 유지되었다.
하지만 기능의 유지와 정서적 안정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일하고 약속을 지키며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능을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주변에서는 그의 필요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필요를 표현하지 않으니 도움이 올 리 없다. 도움을 받지 않으니 계속 혼자 처리할 수밖에 없다. 혼자 처리해 왔다는 사실은 다시 주변 사람에게 그가 괜찮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게 독립성은 점차 성격이 아니라 역할이 된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서 의지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의지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강할 수 있었던 것일까.
최근에는 두 번째에 가까웠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gege가 사라진 지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그 역할을 알아챌 정도로 둔감했다. 그것이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일부 대신하거나, 내가 직접 떠맡으며 생활이 밀려들어 돌아갔기 때문일 것.
아플 때 무슨 약을 먹을지 네이버가 다 아는 것도 그냥 한번 괜히 물어볼 사람.
심심할 때 아무 이유 없이 “모행?”이라고 연락할 사람.
내가 옳더라도 위험하면 혼내줄 사람.
내가 너무 강하게 세상과 맞설 때 안전한 쪽으로 인도할 사람.
평소보다 어리고 무력한 상태가 되어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
내가 잃은 것은 몇 사람인가. 이 사실을 거의 10년 만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조금씩 벽을 두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의존을 허용하는 구조는 평소에는 효율적이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기대가 어긋나 실망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비용을 통제하기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이 사라지면 대체 경로가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취약하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기댈 사람은 없는 상태가 된다. 일상적인 관계들은 남아 있지만, 애초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때의 고립은 슬롯적 관계의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라기보다 의존을 매우 엄격하게 허가해 온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의존을 한 사람에게만 허용하면 그 관계에는 지나치게 많은 기능이 집중된다. 연인은 애정의 대상인 동시에 보호자, 조언자, 비상 연락처, 정서적 피난처가 된다. 관계가 좋을 때는 매우 단단한 결속처럼 느껴지지만, 관계가 흔들리거나 끝나면 사랑만 잃는 것이 아니다.
안전기지 전체를 잃는다.
안전기지 없이 시작을 도모하는 일 역시 오류로 빠지기 쉽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 사람 자체를 알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안전기지가 사라진 상태에서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보기 전에 그 사람이 나에게 비어 있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부터 살피게 된다.
나를 챙겨줄 수 있는지, 내가 기대도 되는지, 위기에서 사라지지 않을지, 나의 약한 부분을 받아줄 수 있을지를 짧은 시간 안에 확인하고 싶어진다. 아직 아무것도 함께 겪지 않은 사람에게 이미 축적된 관계 수준의 안전을 기대하게 된다.
반대로 그 기대가 지나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려 한다. 경계는 더 높아지고, 상대는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관계를 원하면서도 관계가 시작될 조건을 차단하는 모순이 생긴다.
이것은 눈이 높거나 사랑할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안전감을 형성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좁고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에 가깝다.
그렇다면 해결은 새로운 한 사람을 최대한 빨리 찾아 같은 역할을 넘기는 데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 방식은 공백을 빠르게 줄일 수 있지만 기존 구조를 그대로 반복한다. 다시 한 사람이 사랑과 보호, 이해와 돌봄, 일상의 안정까지 모두 담당하게 된다.
더 현실적인 솔루션은 아마도(알아도 잘 안 되겠으나) 퇴행과 의존의 통로를 조금씩 분산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벽을 한꺼번에 허무는 일은 안전하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벽 전체를 없애는 대신 작은 문을 여러 개 만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힘든 일을 모두 해결한 뒤 알리는 대신 진행 중일 때 조금 말해보는 것. 습관처럼 “괜찮다”라고 답하기 전에 실제 상태는 어떤지 생각해 보는 것.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때로는 함께하는 것.
이런 행동은 무장해제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만 허용하던 의존을 여러 관계에서 낮은 강도로 연습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하다.
성숙한 사람도 울 수 있다는 것을 믿자. 판단을 맡길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었다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물론 gege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는 없다. 끝난 관계 역시 새로운 관계 하나로 단순히 교체되지 않는다. 사람은 기능의 묶음이 아니고, 특정한 관계에서만 존재했던 나의 모습까지 그대로 복원할 수도 없다.
나에게 성숙은 계속 자신의 몫을 해내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는 능력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성숙은 퇴행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안전하게 퇴행한 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상태에 가까울지 모른다. 완전한 독립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일이 아니라, 특정한 한 사람을 잃으면 삶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여러 관계 속에서 적절히 기대는 능력일 수도 있다.
내게 부족했던 것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니었음을. 복잡했던 머리가 다소 개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