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게 ‘쎄하다’는 말이 있었다면

-《조선 연애 시그널 : 팔자를 고쳐드립니다》를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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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게 ‘쎄하다’는 말이 있었다면

-《조선 연애 시그널 : 팔자를 고쳐드립니다》를 쓰며



결혼하기 전에도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느낌으로 결혼을 다시 생각해도 되는지, 나는 잘 몰랐다. 말로 꺼내놓으면 별일 아닌 것 같았다. 설명하는 동안 내 쪽의 이유가 더 옹색해졌다. 내가 예민한가 보다. 그렇게 넘긴 일이 많았다.


스무 해쯤 전이다.

내 주변에서는 사주나 궁합을 본다는 말도 조심스러웠다. 미신에 기대는 물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인지심리학의 개념을 내 관계에 가져다 쓸 줄도 몰랐다. 상대가 왜 그러는지 헤아리려는 동안, 내가 왜 불편한지 묻는 일은 매번 뒤로 밀렸다.


요즘 사람들이 연애를 앞두고 성격 유형을 묻거나 궁합을 맞춰보는 모습을 보면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나도 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로의 다름을 좀 더 일찍 알았을까. 덜 싸웠을까. 지금은 전남편이 된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묻게 됐다. 그때 내게 지금의 말과 질문들이 있었다면, 나는 결혼했을까.


오늘의 연애에는 성격 유형과 궁합을 묻고, “쎄하다”는 감각을 나누는 말이 있다. 이 지표들이 정답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름을 얻은 느낌이 질문이 되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선택을 미룰 여지를 얻는 과정에 관심이 갔다.



쎄하면 일단 다시 봐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당시 그런 표현이 세상에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꺼내 쓰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무엇이 불편한지 설명하기 어려웠고, 설명이 막히면 내가 예민한가 보다 하는 쪽으로 돌아갔다.


요즘은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도 심리학 용어가 나온다. 성격 유형을 묻고, 상대의 행동을 어떤 성향으로 설명해보기도 한다. 지나치게 쉽게 이름을 붙일 때도 있지만, 나는 그런 말을 접할 때마다 생각했다. 그때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상대가 화내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쓰기 전에, 내가 싫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봤을까. 같은 일이 되풀이될 때마다 그날의 기분이나 말실수로 넘기지 않았을까.


말을 하나 알게 되면 전에 겪은 일이 다른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다. 따로따로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떠오르고, 그때는 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왜 늘 저 사람의 기분부터 살폈지. 내 말은 어디서부터 없어졌지. 그때의 나에게 그런 질문을 건네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이 소설에 인지심리학자를 불렀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도 놓치는지, 어떤 믿음 때문에 불편한 신호를 넘기는지, 한번 내린 선택을 지키려고 얼마나 많은 이유를 덧붙이는지 들여다보는 사람. 그가 연애하는 사람들 곁에 앉아 질문을 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당사자는 몰랐던 반복을 알아볼 수도 있고, 잘 안다고 끼어든 말 때문에 관계를 더 꼬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를 스무 해 전의 내 곁으로 보내는 이야기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다시 쓰려니 내가 너무 아플 것 같았다. 돌아가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말을 바꿔야 하는지, 하나씩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 삶의 추구미다운 유쾌한 삶을 그리고 싶었다. 일이 틀어져도 다음 장면에서는 웃을 일이 생기는 시트콤처럼. 그 마음도 소설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 하나를 아예 조선으로 보내버렸다. 명리학까지 공부한 인지심리학자 강태오. 남의 연애를 설명하는 데 익숙하고, 정작 자기 연애는 망친 남자다.


그가 떨어진 때는 어우동이 살아 있던 조선.


여자들이 자기 뜻을 말한 뒤의 생활을 유지하기 훨씬 어려웠던 시대, 그곳에서 당사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연애 프로그램은 어떤 소동을 일으킬까.


그곳의 여자들에게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일은 계속하고 싶었을 테고, 혼인을 앞두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마음을 말한 뒤에도 살던 곳에 살고, 하던 일을 하고, 다시 선택할 수 있었을까.


태오에게 연애 프로그램을 열게 했다. 집안 어른보다 당사자의 답을 먼저 받아보겠다는 집, 인연관이다. 남녀 여섯이 스물 하루 동안 장을 보고 밥을 먹으며 서로를 알아간다. 조선에서 하트시그널을 열어본 셈이다.


태오는 궁합을 보고 첫 만남을 권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로 함께 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말로는 괜찮다면서 왜 저 사람 앞에서만 입을 다무는지. 만나고 싶다던 사람을 두고 왜 다른 쪽에 자꾸 눈길을 주는지.


알아차린 것을 말해줘도 될까. 그 말 때문에 막 시작된 마음이 바뀐다면?


남의 연애에 끼어들 자격까지 있다고 믿는 이 남자가, 어디서 처음 틀릴지 궁금했다.


어우동도 이 집에 온다. 그녀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 무슨 옷을 입을지 망설이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상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반갑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다정했을까 싶으면 질투가 나는 날도. 나는 그런 어우동을 써보고 싶었다. 자기 마음에는 솔직하면서 남의 사정에는 무심할 때도 있는 사람. 태오가 그녀에 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 만난 뒤에도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출판사에 보내려고 작년부터 여러 번 깎고 다듬은 이야기다. 이번에는 《조선 연애 시그널 : 팔자를 고쳐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카지노북 응모를 준비하며 먼저 이곳에 내놓으려 한다.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명리학을 공부한 인지심리학자가 조선에서 스물하루의 연애 합숙을 열지만, 참가자들의 마음은 그의 추천을 비껴가고, 손님 어우동의 이름을 알아본 뒤에는 자신이 아는 미래와 부딪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