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글의 시작

첫 여행

by기백

호텔 프런트에서 그가 카드 키 두 개를 받아 들었을 때, 손가락 끝에 닿는 플라스틱의 무게감이 묘하게 차가웠다.


"각자 편하게 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짐 풀고 로비에서 봐."


그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키 하나를 건넸다. 배려였다. 키스 이상의 보폭을 넘겨본 적 없는 사이였고, 첫 여행에서 방을 합치는 것이 여자에게 어떤 압박으로 다가갈지 계산한 끝의 정중함이었다. 하지만 그 정중한 선 긋기 앞에서 여자는 안도감 대신 은근한 맥 풀림과 긴장을 동시에 느꼈다.


여수로 가자고 한 건 그녀였다.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한 구절처럼, 밤바다 앞에서 포장마차 플라스틱 의자에 기대앉아 꼼장어에 소주 한잔을 부딪치고 싶다는 말을 흘렸을 뿐이었다.


그는 그 사사소한 말을 흘려듣지 않고 2박 3일의 일정을 짜왔다. 숙소 예약도 끝냈으니 몸만 오라던 말에, 여자는 캐리어 구석에 가장 단정한 속옷을 넣으며 내심 어떤 밤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각오가 단숨에 허공으로 흩어지는 순간.


그날 밤 포장마차의 공기는 짰고, 연탄불 위에서 타들어 가던 양념 냄새는 짙었다. 소주잔이 몇 번 부딪히고, 그가 꼼장어 한 점을 집어 여자의 앞접시에 놓아줄 때마다 테이블 밑으로 스치는 무릎의 온도가 도드라졌다.


그는 다정했다. 바람이 불자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어깨에 덮어주었고, 길을 걸을 때는 차도 쪽으로 자리를 바꿨다. 그 모든 신사적인 동작들이 오히려 여자의 숨을 옥죄었다.


욕망이 거세된 다정함은 때로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나를 원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품었던 것일까.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엘리베이터 안, 층수가 올라갈수록 침묵은 무거워졌다. 여자의 방은 7층, 남자의 방은 8층이었다. 띵 소리와 함께 7층 문이 열렸을 때, 여자는 내리지 않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우리 방에서 맥주 한 캔만 더 마셔요."


배려 뒤에 숨겨둔 그의 정적을 깬 건 여자였다. 방 문이 닫히자마자 현관 센서등이 꺼지기도 전에 남자의 호흡이 달라졌다. 낮 동안 그를 붙들고 있던 반듯한 태도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남자는 벽에 등을 기댄 여자의 턱을 쥐고 입을 맞췄다. 조심스러웠던 손길은 사라지고, 코트 단추를 푸는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참느라 힘들었어."


귓가에 닿는 남자의 숨소리는 뜨거웠고, 말끝은 낮게 잠겨 있었다. 방을 두 개 잡았던 것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욕망이 너무 커서 상대를 다치게 할까 봐 억눌렀던 두려움의 흔적이었다.


여자는 그의 단단한 어깨에 팔을 감으며 비로소 안도했다. 거창한 바다도, 낭만적인 노래도 아닌, 날것의 체온과 숨소리가 부딪히는 그 좁은 현관 한구석에서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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