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독자의 두 번째 소설, 이렇게 탄생했어요

휴남동 서점 이후 4년 만에 '윗집 부부'로 돌아온 황보름 작가

by화양연화

3개월 만에 쓴 첫 장편소설이 전 세계 50개국 출간,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하고 2024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 2024년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소설 부문 3위, 더블린 문학상 롱리스트에 선정된 작가가 있다.


'눈 떠보니 스타가 돼 있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소설 좀 읽는 사람이라면 읽었거나 한번은 들어봤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2022년 1월 출간, 아래 휴남동)의 작가 황보름에 관한 이야기다. 그 후 4년 만에 두 번째 소설 <윗집 부부>(2026년 6월 출간)를 들고나온 황 작가를 8월 말 경기도 화성 동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되돌릴 수 없다"라는 말에 큰 충격"

IE003669759_STD.jpg▲경기도 동탄 한 카페에서 만난 <윗집 부부> 황보름 작가 ⓒ 최은경

직접 만난 황 작가는 화장기 없는 얼굴이 맑고 단아해 보였다. 첫 소설이 소위 '대박' 났으니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을 텐데… 질문을 받자마자 작가는 실제 부담이 엄청났고, 한동안 다음 소설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늘 회의적으로 답했단다. 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시 쓰고 싶다,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잘 쓰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 그리고 '그 글을 완성하자'가 목표였죠."


두 번째 소설 <윗집 부부>의 소재는 저출산이다. 황 작가는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인구 전문가가 나와서 하는 말을 들었다. 현재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1.3인데 그 미만으로 3년 이상 지속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 작가는 "되돌릴 수 없다"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우리 윗세대들은 얼마나 더 걱정될까?' 생각하던 차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대한민국 인구 위기가 너무 걱정된 나머지 딱 한 커플만 설득하려고 나서는 할아버지 이야기.' 그의 두 번째 소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윗집 부부>가 나올 당시 나는 드라마를 계약해서 내 모든 시간을 대본에 올인하느라 숨도 반만 쉬면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카라을 주문했고 첫 장만 열어 본다는 게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입이 터져버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슬퍼도 울 시간이 없었다. 일단 주린 배를 채우는 심정으로 끝까지 완주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감동이 심장 어디쯤 붙어있던 버튼을 눌렀고, 그러자 눈에서 슬픔이 흘러내렸다. 남이 울면 일단 따라 울고 보는 헤픈 속성만은 아니었다.


재미있고 따뜻한데 진부하지 않고 이야기 흐름이 뻔하지 않았다. 초저출산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위기를 느끼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현실을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나와 다른 세대의 삶을 마음 깊이 연민하고야 마는 것이다(세상에 연민보다 무서운 감정이 또 있으랴).


문체도 단단하고 관념적인 표현이나 관습적인 묘사 없이 모든 문장이 고유하다. 이런 글을 보면 내가 쓰는 글과는 상관이 없더라도 영향을 받게 된다. 글을 읽는 안목이 높아지면 자기 글에도 기준이 높아지니까.


'경직'이라는 주인공 옆에는 친구 항구와 윗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 봄과 가을이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독특한데, 이에 대해 작가는 등장인물의 이름만으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단다. 경직된 삶을 살아온 주인공에게 '경직'이란 이름은 그의 삶을 대변하고, 그의 50년 지기 '항구'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타인을 받아주는 존재임을 뜻하며, '봄'과 '가을'은 계절이라는 연결성을 줌으로써, 이 둘이 얼마나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작가에게 여름과 겨울은 너무 화려한 느낌이고 봄과 가을은 아련한 느낌이란다).


경직이 소설 속에서 처음 만나는 인물의 이름은 봄, 가을, 대해, 잎새, 산 등 모두 자연에서 왔다. 이는 경직이 오랜 시간 동안 타인을 멀리하고 관계를 끊다시피 하고 살았는데, 이런 그에게 자연을 배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타인의 삶에 녹아들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작가는 말했다. 자연과 타인은 의식하지 않아도 늘 우리 주변에 있는 거니까.


"사실, 이런 이야기는 제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요. 그래서 제가 북토크 있을 때마다 말하고 다녀요. 해외 출판 에이전시에도 이 사실을 전해달라고 요청했어요,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데 그걸 모를까 봐요.(웃음)"


작가가 애정하는 소설 속 캐릭터

IE003669671_STD.jpg▲윗집 부부 ⓒ 클레이하우스


바카라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좋았던 건 아래 두 문단.

"바쁘게 산다는 건 얇은 선에 이렇게 막 선을 두르는 것과 같아요. 선에 실을 계속, 계속 두르다 보면 제 인생이 점점 두꺼워질 거잖아요. (...) 그렇게 제 인생이 김밥처럼 두툼해지면 좋겠어요."(216p)

"제 인생의 코어에 접근해 저를 망가뜨리려면 그 많은 실을 다 풀어야 할 거예요. 매우 수고스럽게. (...) 말 한마디에, 타격 한 방에 절 때려눕힐 순 없을 거라는 말이에요. 전 쉽게 망가지지 않을 거니까요. 바쁘게 산다는 건 제 코어를 지키는 일이에요. 저를 지키는 일이에요" (217p)


인생 별거 없다. 뭘 그리 애쓰고 사느냐? 이제 우리 나이엔(50대 중반) 건강을 챙겨야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하냐?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런 말끝엔 늘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가 부록처럼 붙는데, 이럴 땐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내 걱정을 하는 사람 앞에서 불퉁한 말로 대꾸하는 건 배은망덕한 짓이라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금 난 내 코어를 지키고 있는 거라고. 나를 지키고 있는 거라고!


반면 황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경직과 봄'의 대화였다.

경직 : "가을이가 그러던데. 아내가 새초롬해서 좋아하게 됐다고"
봄 : "저한테도 그랬어요. 어르신이 새초롬해서 좋아하게 됐다고"
경직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어쩐지 목구멍이 뜨거워져 침을 천천히 삼켰다. (307p)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 경직이 그 누구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여기(나이 70이 넘도록)까지 와요. 물론 가족들은 그를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않잖아요. 그 누구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경직에게 누군가가 처음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까칠하고 새초롬한 모습 그대로 좋았다고 말해주는 장면이거든요. 저는 쓰면서 이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황 작가의 말을 듣고 상상해 보니 양은냄비 같은 내 감성에 울컥하고 또 빨간불이 들어왔다. 사실 나는 등장인물 중 '항구'라는 캐릭터에 가장 몰입했다. 두 번의 사별을 겪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남자.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혼자 밥을 먹고 고요가 사무친 집 안에서 자신의 발소리를 인기척 삼아 살아가는 남자. 황 작가도 가장 애정 가는 인물로 항구를 뽑았다.


"항구라는 캐릭터는 고독하잖아요. 쓰면서도 미안할 정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고. 그럼에도 저는 항구라는 사람이 멋졌어요. 뭔가 예술가적인 인생이랄까요? 자기만의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사람. 비록 상처로 인해 그렇게 살고 있긴 하지만 그 누구의 참견 없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 어떻게 보면 항구는 제가 동경하는 캐릭터이기도 해요. 제가 은둔하는 사람 좋아하거든요."


한국 소설 중에 남자 노인이 주인공인 경우는 흔치 않다. 소설을 읽은 독자층이 여성이 많고 남성 노인에 대한 호감이 낮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도 '할머니'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했다는데 거절했다고. 작가는 도전해 보고 싶었단다. 내 문장으로 남자 노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써서 한국 소설의 문턱을 좀 낮춰보자!라는 마음으로.


성공적인 시도였다. 독자들이 알아봤다. '이 바카라을 읽고 아빠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후기가 많기 때문이다. 바카라을 읽고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고, 나를 성찰하게 되는 게 바로 문학의 힘 아니겠는가.


작가가 퇴고할 때마다 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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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탄 한 카페에서 만난 <윗집 부부> 황보름 작가 ⓒ 최은경


황 작가는 '삶이 슬프다'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그의 내면에 들어있는 게 슬픔이라서 소설에서 좋아하게 되는 건 '슬픔과 외로움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라고. 그런 작가의 소설이다 보니 바카라을 읽는 동안 여러 부분에서 나도 휴지를 뽑았는데, 작가는 어디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쓰면서 정말 많은 부분에서 울었는데, 특히 봄이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가 찾아오잖아요. 식당을 하던 엄마가 식당 문을 닫은 건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고, 3개월 동안 봄을 보살피다가 떠나는데 이때 엄마가 봄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해요. 딸을 위해 쓸 시간을 줘서라면서요. 이 부분은 퇴고할 때마다 울었어요."


담백하게 썼는데 엄마와 딸의 마음을 다 알 것 같아서 나 역시 눈물을 줄줄 흘렸더랬다. 황 작가는 바카라이 나온 뒤 가장 인상 깊었던 독자 리뷰로 "노인이 어른이 되어 가는 이야기"를 꼽았다. 참으로 이동진도 울고 갈 한 줄 평이다.


황 작가가 두 번째 소설을 완성하고 든 생각은 "다음 세 번째 소설은 잘 쓸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었단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참으로 반가운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작가란 '쭈뼛거리는 자세로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혼자 서 있는 사람이고, 독자는 그런 작가에게 다가와 안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안아줌으로써 그가 동력을 잃지 않고 좋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나갔으면 좋겠다.


출간 이후 연일 북토크로 쉼 없이 달리는 황 작가는 9월 11일 스페인 세고비아에서 열리는 문학 축제에 초대받아 출국했다. k문화의 힘을 세계 널리 알리고 다니는 그에게 팬의 한 사람으로 큰 박수를 보낸다.


바카라 읽기 좋은 가을이다. 가족과 갈등을 겪고 있거나 사는 게 버거운 사람(=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또 나), 한바탕 울고 싶은 사람(이건 내 친구), 마음이 시려 따뜻한 바람이 필요한 사람(도로 나)에게 소설 <윗집 부부> 일독을 권한다. 수정 같은 슬픔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그대의 눈에서 툭 하고 떨어질 것이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면서, 마음에는 은근하게 보일러가 켜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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