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채용?
저는 마케팅 대행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프로젝트가 끝났는데, 저와 같이 일하던 주니어 마케터가 그 회사에 정식으로 채용됐습니다.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똑똑한 인재들을 스타트업에 더 많이 불러들이기, 였거든요.
사실 요즘 주니어는 어디서도 잘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취업은 매 시대마다 힘들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AI가 등장하고 나서는 웬만한 기회도 주니어한테 잘 넘어오지 않는 것 같아요.
마케팅 현직자로서 취업준비생 대상의 멘토링을 했었는데요. 제가 멘토링했던 친구들 중 가장 "같이 일하고 싶다"는 느낌을 준 친구가 있었어요. 그러던 중 마침 한 프로젝트에서 일손이 필요한 업무가 있었고, 그때 바로 떠올랐죠.
일부를 프리랜서처럼 해볼 수 있겠냐고 제안했고, 저는 그 멘티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이전에 몇몇 기회를 놓쳐 아쉬운 경험이 있던지라 이번 기회는 꼭 잡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일을 해보니 더 좋았어요. 부여받은 업무를 '그냥' 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해내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AI로 알아낸 지식이 있어도 바로 묻지 않고, 자기 선에서 최대한 이해한 다음에 질문하더라고요. 질문 많이 하는 게 좋은 자질이긴 하지만, 생각 없이 하는 질문은 바카라임 전가가 될 때도 많거든요. 이 친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디테일도 그래요. 하나하나 마이크로매니징으로 챙겨질 게 아니잖아요. 서로 스트레스고요. 근데 이 친구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스스로의 기준에 맞추려고 디테일을 되게 챙겼어요. 그러니 저도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방향을 잡아주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사롭게 거슬리는 게 없으니까요!
요즘은 AI가 발달하다 보니 하드 스킬, 특정한 어떤 것을 잘하는 능력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이력서로는 안 보이더라고요. 같이 일을 해봐야 알아요.
이전에도 대행을 몇 차례 했는데 이때 느낀 건 결국 스타트업이 원하는 건 평생 외주를 쓰는 게 아니라 팀 내부에 역량을 쌓는 거였어요.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듣는 말이 늘
- 저희 팀 와서 일할래요?
- 우리 팀원들이 당신만큼 할 수 있게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 우리 팀에 필요한 인재를 정의해 주고, 채용을 도와주세요.
이 셋 중 하나였거든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애초에 채용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업은 이 인재를 고용할 의무는 없었죠. 제가 대행과 채용을 결합한 상품을 실험해보고 싶어서 제안드렸고, 감사하게도 기업이 오케이를 해주셨어요.
제안은 이랬어요. 원래라면 저 혼자 마케팅 업무를 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주니어를 제 서포터로 같이 투입하는 거요. 3개월 동안은 시니어 마케터인 제가 구조를 잡고 전략을 짜고, 이후에 정규직으로 채용될 마케터가 계속 실험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두는 거죠. 예를 들면 우리가 하는 활동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하고(GTM 세팅 같은 것들이요), 우리 고객을 어떤 식으로 인터뷰하는지, 지금까지 팀이 고객에 대해 파악한 정보는 어느 정도인지, 이걸 각 콘텐츠와 소재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려주는 것까지요.
그렇게 3개월간의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시니어 마케터로서 이 회사의 단계에서 필요한 마케팅 활동들을 파악해 보고 하나씩 해나갔습니다. 지금 우리 제품을 쓰고 있는 고객은 누구지? 면밀히 정의하고, 그들과 유사한 잠재고객들을 만날 목적으로 기획한 콘텐츠를 발행하고요. 주니어는 그중 B2B 리드 획득을 위한 SEO/GEO 블로그 콘텐츠를 핵심으로 맡았어요. 개별 글의 기획부터 작성, 발행까지요. 팀의 요구에 따라 시딩 캠페인을 함께 기획하기도 했지요.
이 모든 과정에서 팀과 주니어 마케터의 맥락은 점점 더 쌓이고, 서로에게 딱 맞는 모양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식 채용으로 이어졌어요.
주니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누구나 큰 기업에 가고 싶어 하죠. 스타트업의 매력은 잘 몰라요. 안전하다고 못 느끼기도 하고, 기업에 대한 정보량이 잘 알려진 대기업들보다 압도적으로 적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언제 뽑아줄지 모르는 대기업만 바라보고 준비만 하면서 청춘을 보내기보다는, 진짜 체화할 수 있는 경험, 그러니까 돈 받고 하는 진짜 일을 해보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달으면 그제야 스타트업을 고려하더라고요.
팀을 위해 똑 부러지면서도 바카라임감 있게 일할 인재가 필요한 스타트업,
그리고 내 가치를 알아봐 줄 곳이 필요한 주니어
매칭이 성사된 거죠. 저는 이걸 한 번 더, 아니 여러 번 더 반복해보고 싶어요.
사실 품은 정말 많이 듭니다. 제가 혼자서 해도 될 일을 누군가에게 위임하려면, 쪼개고 알려주고, 피드백하고 해야 하잖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 다만 이 방식으로는 한 번에 많은 기업과 취준생을 도울 수 없다는 게 조금 답답하기는 해요.
일단은 제 방식대로 차곡차곡 사례를 쌓아보겠습니다. 하다 보면 또 방향을 찾을 수 있겠죠!
마케팅 팀은 없지만 우리 서비스를 더 많은 고객에게 닿게 하고 싶다면 연락 주세요. 같이 고민해 보고, 제가 진짜로 도움드릴 수 있는지부터 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