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anger, 2026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 원작 소설은 양로원으로부터 전달된 비보를 들은 뫼르소의 말로 시작했다면,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는 알제리의 감옥에 수용되어 “아랍인을 한 명 죽였습니다.”라는 뫼르소(뱅자맹 부아쟁)의 말로 시작한다. 프랑수아 오종이라는 이름만 얼핏 듣고는 원작과는 다른, 그만의 독특한 각색이 있을 것 같았지만 영화 <이방인>은 원작 소설 <이방인>에 아주 충실하다. 심지어 한국어 자막은 김화영 씨가 번역해 옮긴 것(민음사) 그대로인 것 같아 원작의 감상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인상이다. 그러나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영화는 흠잡을 곳 없는 완성도로 어느 쪽에게도 매력적일 것이다.
뫼르소는 필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거의 하지 않는다. 소설은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기에 그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그의 생각을 대부분 들을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모르겠어.’, ‘중요하지 않아.’, ‘의미 없어.’ 같은 말들뿐이며 심지어는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갈음하는 때도 많기에 그 속을 잘 알 수 없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 잠에 들며, 장례식에서 돌아온 이튿날 마리(레베카 마르데)와 데이트를 한다. 마리는 뫼르소와 시간을 보내다가도 자신을 사랑하냐고 연신 되묻는다. 매번 뫼르소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답할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감정적으로 결여가 되어있는 게 아닌가 싶은 뫼르소는 아랍인 무사 함다니(압데라만 데카니)를 죽인 죄로 재판받을 때 언급한 그의 성정 때문에 불리한 판정을 받을 상황에 부닥친다.
카뮈는 1913년, 그러니까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태어났다. 그리고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있고 난 뒤 1942년에 이 소설을 냈다. 국가가 사람들을 전선으로 몰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거대한 혼란이 올 것이라는 징조가 보이는 시대를 살았다. 누군가는 그 공포와 불안감 때문에 전쟁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도 한다. 얼핏 뫼르소를 지금 보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보일지 모르나 그 시대상을 생각하면, 카뮈가 말한 부조리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달리 보이는 지점들이 많다.
뫼르소는 재판 중 아랍인을 죽인 이유에 대해 ‘태양’ 때문이라고 답한다. 다분히 철학적이며 관념적이고, 원작에서도 상징적인 표현이 많아 민음사에서 낸 소설은 약 300페이지 분량이지만 본문이 15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작품의 해설에 해당한다. 소설과 달리 오종이 영화에 덧붙인 것은 여성 캐릭터와 식민지에 대한 인식이다. 오종은 아랍인 청년에게도 캐릭터를 구축해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뫼르소와 아랍인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들었고, 원작에선 이름도 없었던 이에게 이름을 줬고, 그의 누나 제밀라(아자르 부자우이트)와 마리가 여성으로서, 가족으로서,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단지 캐릭터 구축에서 그치지 않고, 뫼르소가 수많은 무의미한 것들 와중에도 내 삶을 직시하겠노라 다짐하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도 더 탄탄하게 한다.
사실 원작 소설의 영화화보다, 단순 시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원작에 충실하지만, 이미 대단한 원작이고 충실하고 훌륭한 시각화는 그것만으로 많은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오종도 이것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여느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영화가 좋아 원작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뫼르소의 응시는 태양, 우주를 넘어 나의 심연을 향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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