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Ballerina, 2025

by박종승

잘 만든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리고 극장을 나설 때면 그 감정이 고스란히 현실 세계에 이어지곤 한다. 잘 만든 액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리고 극장을 나설 때면 몸이 근질거린다. 나도 영화 속 인물처럼 화려한 몸짓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존 윅 3: 파라벨룸>(2019)과 <존 윅 4>(2023) 사이 어딘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스핀오프 <발레리나>는 그걸 해내고 만다.


그게 어려운가 싶을 수 있지만, 21세기 들어 해내는 영화를 꼽자면 본 시리즈인 <존 윅> 시리즈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라고 쓰고 한 30분을 진짜 없나 하고 뒤져봤는데 <짝패>(2006), <일대종사>(2013), <폭스캐쳐>(2014),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정도가 있었다). 성공한 시리즈의 스핀오프로서 영화 곳곳에 새겨져 있는 인장으로 상당 부분 힘을 얻고 가지만 <발레리나>는 그 자체의 액션 세계를 충분히 구축한다.


패인이 뭐라고 생각하지?

- 상대가 힘이 셉니다.

고작 힘 따위가 승패를 좌우한다 생각하나? 넌 언제나 약한 쪽일 것이며 언제나 더 작고 불리한 입장일 것이다. 넌 상대의 판에서 놀아나니까 지는 거다. 이기고 싶나? 판을 바꿔.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고 속임수를 써서 너의 장점을 살려. 끌려가지 말고 여자처럼 싸워(fight like a girl).


존 윅(키아누 리브스)을 배출했던 암살자 양성 조직 ‘루스카 로마’에서 발레리나이자 킬러로 성장한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는 훈련 도중 힘이 센 남자와 대련에 패배하고 원인에 대해 묻는 교관 노기(샤론 던컨브루스터)와 나눈 대화다. 말 그대로 기존의 존 윅을 포함한 남성이 주인공이었던 액션과는 다를 것이라는 천명이었고, 실제 영화 안에서 그것을 역시 해내고 만다. 주방에서 접시를 던지기도 하고, 위급한 상황에 손에 잡힌 아이스 스케이트를 무기로 쓰기도 하는데 그것이 단지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한 이미지를 전시할까 했던 <미옥>(2017)의 것과는 다르다. 액션은 그럴듯했으나 그 외의 것이 너무나 조잡했던 <악녀>(2017)와도 다르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이라는 설정 말고는 복수를 포함한 무엇의 원동력도 제대로 삼지 못했던 많은 영화들과 궤를 달리한다. 그깟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도 굉장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존 윅> 시리즈의 긴 시행착오를 겪은 후의 작품이기 때문에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스핀오프라서 이 영화를 독립적으로 평가하기엔 아쉬울 지도 모르지만, 스핀오프는 그래서 스핀오프인 것이다. 영화 곳곳에 남아있는 <존 윅> 시리즈의 인장들, 소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세계관의 확장은 아니지만 버스터 키튼의 영화 속 장면을 보여준다던가, 정두홍 무술감독 같은 아시아권 배우와 함께 주인공이 게임 속 미션을 수행하는 듯한 느낌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의미 없이 반짝거리고 쿵쾅거리기만 하는 소위 요즘의 넷플릭스 영화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원작의 주인공으로서, 어쩌면 스핀오프에 대한 지원사격으로 출연한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은 단지 조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로서 등장해 역시 주인공 이브의 캐릭터가 구축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으나 속편이 기다려지는 작품이다.


#발레리나 #아나데아르마스 #키아누리브스 #정두홍 #렌와이즈먼 #영화


개인적으로 <짝패>를 참 좋아하고 정두홍 감독도 좋아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 그가 등장하는 액션씬은 좀 허접했다. 상대를 가격하기 위한 액션이 아니라 소위 합을 맞추기 위한 액션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릴리 슈슈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