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그녀(2)

2020년 a32 스토리 소바카라자 공모전 낙선작

호숫가


‘오늘도 올까?’


초조한 듯, 연신 손목시계를 보며 호숫가 주변을 왔다갔다하는 종석. 고정된 시간은 없으나 보통 점심이후 호숫가를 쳐다보고 있으면 인기척도 내지 않고 바로 내 지근거리에 서 있는 소녀. 매일은 오지 않는 듯 하다.

호반이 자리한 이 곳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라도 안개가 자욱한 날이 잦다. 365일까지는 모르겠는데 얼마 전 파악한 바로는 2~3일 이상은 안개가 늘 낀다. 종석은 전자담배를 꺼내 깊게 들이쉰다. 전자담배의 구멍을 통하여 올라오는 연기는 호수의 안개와 융화되어 또 다른 안개를 형성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랬었지’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된 곳도 바로 이 별장이었기 때문이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새벽. 정기 관리 차 방문한 별장 관리인이 작업실에 목을 매단 채 숨져있는 아버지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그만큼 인근 마을과 많이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념이 종석의 머리와 몸을 휘감기 시작할 때, 뺨에 스치는 스산한 바람과 함께 지근거리에 등장한 소녀. 근데 오늘은 좀 달라보였다. 수척해진 표정, 호숫가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려는 듯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똑같은 옷차림에 순간 소름을 느낀 종석은 천천히 그녀에게도 다가간다.


해는 아직 떠 있으나 안개로 인하여 구름에 가려졌다 비춰졌다한다. 나와 그녀와의 거리는 50m정도 될까? 내 발걸음이면 분명 멀지 않은 거리인데 심리적 거리는 100m, 아니 그 이상 되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다가가면 안 돼’라고 내 마음속 무언가가 외쳤으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내딛는 발걸음에 더욱 힘을 준다.


이윽고 서로의 숨결까지 느껴지는 거리까지 오자 내 발걸음도 멈췄다. 그러나 그녀는 옆에 누가 오든 하염없이 호숫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만 있다. 종석이 한 손을 뻗어 소녀의 어깨를 건드리려는 순간


“건들지 마!”

라고 크게 소리치는 소녀. 수척해진 표정이 갑자기 매서운 표정으로 종석을 노려본다. 두 눈망울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순간 당황한 종석의 표정에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이야기한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아니, 무엇을…”

“무서웠어, 외로웠다고. 왜 이제야 다가 온 거야”


소리 내어 우는 소녀의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는 종석. 순간 호숫가에 비친 모습이 종석이 아닌 아버지의 모습이 비춰지자 당황한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수면 위로 강하게 비춰지자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하며 왔던 길로 돌아간다. “잠깐만”하고 불러 세우려는 찰나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 그녀. 어안이 벙벙한 채 종석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헛된 진실


“왜 이렇게 늦었어? 누구 만나고 왔어?”

미영이 걱정스러운 어투로 종석에게 묻는다.

“아냐. 밥 생각 없어. 먼저 먹어. 그리고 나 작업실로 가보게”

“오빠, 잠깐만 나랑 이야기 좀…”

퉁명스러운 종석의 말에 미영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유화물감을 집어 미친 듯이 덧칠하는 종석. 여전히 얼굴은 비어있는 소녀상에 머리를 싸매고 “으아아”하고 크게 소리친다. 이윽고 뒤에서 –끼이익-하고 열리는 문. 미영이 좌절하는 그를 뒤에서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위로한다.


“괜찮아 오빠.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이제 내려놓아도 돼”

“아냐, 용서할 수가 없어. 아버지도, 나 자신도”

“오빠가 이러면 나 멀리서도 힘들어하는 거 알지?”

“가지 마 미영아, 혼자서는 무서워, 외로워”

“오빠, 난 어디에도 안가. 그러니까 언제든 다시 돌아와도 돼 알겠지?”


눈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미영의 손길. 그러나 작업실 한 쪽에 놓인 전신거울에는 종석 홀로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는 듯 눈을 감고 허공에 얼굴을 비빈다. 캔버스 속 소녀상의 유화물감이 눈물 흘리듯 바닥을 적신다.

불이 꺼진 별장 안.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곳곳에 먼지가 내려앉아있다. 부엌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머그잔과 반쯤 남은 블랙커피가 담겨진 커피포트만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가운데에 놓인 깨어진 액자 하나.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20대의 종석과 옆에서 마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햇빛을 받아 더욱 짙어진 주황색 머리칼을 한 손으로 넘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노란색 밀짚모자를 잡고 있는, 청아한 흰색 원피스의 그녀가.


다음 날 아침, 종석은 약간의 짐을 들고 별장 문을 나선다. 차에 타려던 찰나 뒤돌아 별장을 말없이 쳐다보는 그. 2층 창문 속 누군가 또한 그를 말없이 쳐다본다. 창문 곳곳에 낀 성에를 보며 종석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친다. 그녀 또한 힘없이 한 손을 들며 구슬프게 인사한다.



고개 숙인 소녀


안개가 자욱한 오후, 여느 때처럼 사람 한 명 없는 호반에 소녀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6살처럼 보이는, 앳된 모습의 소녀는 하얀 원피스에 노란 밀짚모자, 머리색은 짙은 주황색, 초록색 구두를 신고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서있다. 안개 틈 사이로 해가 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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