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제1회 광진문학상 수필분야
파란색과 회색의 줄무늬가 특징인, 어느 시장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바지다. 언뜻 수수하면서도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그 바지를 일하러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어머니께서 늘 입고 계셨다.
왜 똑같은 바지만을 줄곧 입고 있는지 궁금했다. 마치 어머니의 두 다리를 옥죄는 죄수복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나는 그 바지가 싫었다. 오죽하였으면 동네 마실 나갈 때나 장 보러갈 때 제발 그 옷만은 입지 말라고, 아예 새로 사 입으라고 애정 담긴 잔소리까지 할 정도니까.
단순히 사람의 피부와 신체를 보호하고 방한해주며 패션의 감각까지 살려주는 일반적인 기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뭐랄까. 흔히들 말하는 “명품”을 입어주면 못난 사람도 있어 보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어머니가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낡고 촌티 나는 옷들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내 스스로 용납이 안 되어서 일거다.
어찌 보면 나의 변덕일수도 있고, 크게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기에 비싸고 좋은 물건이나 음식을 쉽게 구경한다거나 살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항상 용모를 깨끗이 단정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어느새 나의 삶의 규정 한 부분으로 인식되어버렸다. 자신을 괄시한다거나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닌, 대인관계에 있어 최소한의 기본적인 매너이자 예의라는 것을 어머니께서는 우리 형제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본인에게는 화장품 하나라도 신중히 고민한 뒤에 살 정도로 엄격하면서 우리 형제에게는 최대한 좋은 옷, 물건, 음식 등을 있는 돈 없는 돈 아껴가며 필요할 때마다 사다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홀몸으로 못난 두 아들을 키워 오셨던 어머니였기에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다른 어머니들 못지않게 크셨다.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존귀하고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원석 같은 어머니가 초라한 모습으로 밖에 나간다는 것은 아들로서 매우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한 이 복잡 미묘한 감정.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 느끼셨으리라.
한 번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어머니께 바지 한 벌을 새로 사다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는 게 아닌가.
“됐다. 마음은 고맙지만 바지 사줄 돈으로 차라리 저축하거나 네 용돈으로 써라.
형이랑 싸우지 말고 말이나 잘 들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자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하였는지 크게 웃음이 터졌다. 당사자는 별 신경도 안 쓰는데 주변인이 속으로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는 그 자체가 웃겨서 일까. 아니면 당당한 모습에 안도해서 일까. 둘 다 맞을지 모르겠다. 이 수필을 쓰는 지금도 어머니는 여전히 낡은 싸구려 바지를 입는다. 매일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 저녁 늦게 들어와 많이 피곤할 텐데도 항상 우리 두 형제에게 아낌없는 충고와 훈계를 번갈아가며 하신다. 역시 그 바지를 입은 채로 말이다.
때 마침 서랍 안에 바지가 포개어져있어 조심히 꺼내 손으로 만져봤다. 다 헤져진 바지. 그러나 정감이 간다. 부드러운 촉감. 어머니의 품 안 같다.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려진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바지 위로 뚝뚝 떨어졌다. 철없는 못난 아들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어머니 생각, 세상과 어머니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들이 눈물 안에 섞여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다 이내 바지를 다시 포갠다.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과 용서도 같이 바지 속에 담아 정성스레 접는다.
처음 보기에는 그저 낡고 촌스러운 싸구려 바지로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의 진정어린 사랑과 넘치는 헤아림을 깨달았기에 입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거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아니, 되러 자랑스럽다. 그 바지를 단 한 번도 싫어하는 티 낸 적 없이 계속 입고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두 형제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소중한 증표이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뢰의 끈으로 여기시기 때문에.
어머니의 바지는 죄수복이 아니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편견이었을 뿐이다. 그건 훈장이다. 나를 반성하게 해주고 관점을 달리 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비록 남들이 인정해주고 좋아하는 “명품”은 아닐지라도 이미 나에게 있어 낡고 촌티 나는 그 싸구려 바지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유물이다.
옥상 위 건조대에 어머니의 마음이 한 줄기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빛난다. 옆에 같이 널어져 있는 나의 오래된 청바지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