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26
철이가 오기로 한 날이었다.
연은 평소보다 일찍 미용실 문을 열었다.
거울을 닦고, 수건을 개고,
괜히 립스틱도 한 번 발랐다.
거울 속 자신을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지금 뭐 하노.'
일곱 해의 결혼생활이 끝나고
다시는 누군가를 기다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또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때 자신이 떠나보낸 사람을.
딸랑.
문 위의 종이 울렸다.
“왔나.”
철이가 웃으며 들어왔다.
오늘은 기름 묻은 작업복 대신
깨끗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은 와 그리 멋을 냈노?”
“첫 데이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언제 데이트하자 했나?”
“같이 밥 묵으면 데이트지.”
“누가 같이 밥 묵자 캤는데?”
철이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니가 내보고 처음으로 오라 안 했나?”
연은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괜히 수건을 다시 접으며 중얼거렸다.
“말은 억수로 잘한다.”
“그래서, 안 갈 끼가?”
연은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뭐 묵을 낀데?”
“니 묵고 싶은 거.”
“그라믄 국수.”
철이가 활짝 웃었다.
“가자.”
둘은 시장 안 작은 국숫집에 마주 앉았다.
철이는 자기 그릇에 올려진 계란지단을
연의 그릇에 덜어주었다.
“묵어라.”
“오빠 묵어.”
“내는 됐다.”
연은 웃었다.
예전에도 철이는 늘 그랬다.
좋은 것은 연에게 먼저 주고,
자기는 괜찮다고 하던 사람.
“연아.”
“응.”
“니 요새 웃는 거 보니 좋다.”
“내가 언제 안 웃었나.”
“처음 다시 만났을 때는
웃어도 웃는 거 같지가 않더라.”
연은 잠시 젓가락을 멈췄다.
별것 아닌 말인데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국수를 먹고 나온 두 사람은
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철이가 작은 머리핀 하나를 골랐다.
“내가 미용사인데 머리핀이 없겠나.”
“그래도 이건 내가 사주고 싶다.”
연은 못 이기는 척
머리핀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늘 헤어지던 갈림길에 도착했다.
철이가 걸음을 멈췄다.
“들어가라.”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철이의 손을 바라봤다.
기름때가 채 지워지지 않은 거친 손.
칠 년 전,
잡고 싶어도 잡지 못했던 손이었다.
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오빠, 손 좀 줘 봐라.”
“와?”
“그냥.”
철이가 손을 내밀자
연은 그 손을 가만히 잡았다.
철이는 놀란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연아, 이래도 되나.”
연이 웃었다.
“내가 먼저 잡았잖아.”
그제야 철이도
연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연이었다.
“내일도 올 거제?”
“그럼.”
“모레도?”
철이가 웃었다.
“니가 오라 카면 매일 오지.”
연은 그 말에
괜히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은 주머니 속 머리핀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스물한 살에는 놓아버렸던 손.
서른을 앞둔 지금,
그 손을 다시 잡았다.
일곱 해를 돌아
다시 시작된 사랑.
연은 그날 밤,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행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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