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중한 아이에게 왜 그랬을까?

아이를 낳고 커지는 부모에 대한 분노

by멘디쌤 조명국

갓 태어난 아이는 참 귀엽고 이쁩니다. 나와 배우자를 반반 닮은 아이.

잠만 잘 자도 이쁘고, 똥만 잘 싸도 다행입니다.

내 아이지만 어디 내놔도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예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쁜 아이를 볼 때

가끔씩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바로 나를 키웠던 부모에 대한 분노인데요.


"이렇게 소중한 아이에게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분노가 생기는 부모들


저는 분노까진 아니지만, 가끔 내가 다소 덜 받은 것 같은 사랑을 이 아이가 충분히 받을 때

부럽다는 생각 + 약간의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보다 더 슬프고, 더 좌절감을 느끼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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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런 어린 시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 부모님이 어린 시절 과도한 통제를 보임

- 술이나 도박, 외도 등 문제를 일으키면서 가족을 괴롭힘

- 첫 째 딸이니까 잘해야 한다 등 아이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여

-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아이에게 부여

-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과도한 불안을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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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들은 우리에게 상처로 남고

이런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을 경우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다 지난 일이라 묻어두고,

부모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었을 때

이런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크게 건드려질 수 있습니다.


이때의 슬픔은 분노로 치환되고,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

'이렇게 이쁘고 소중한 아이에게 도대체 왜 그랬을까?'

표현상 의문문이긴 하지만 사실 원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쁘고 소중한 아이에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를 '이해하고 싶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이유들을 한 번 나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의 상황을 '이해해야' 덜 아프기 때문입니다.

즉, 내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입니다.


도로에서 위험천만하게 운전하면서 내 차를 앞질러 가는 운전자를 보면, 당연히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운전자가 사실 아이가 응급상황이라 병원으로 급하게 가고 있었다는 걸 알면 우리는 화가 누그러지게 됩니다. '저 사람이 인간이 덜되었거나, 날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구나' 하면서 말이죠.


부모님이 나에게 저랬던 이유를 찾자면, 우리의 부모님 역시

그리 살갑지 않은 부모님(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고 배운 대로 우리에게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아이 양육에 대해서 다소 무지했고

지금보다 정보가 부족하고 애착 등에 대한 중요도도 높지 않았던 시기라는 점도 있습니다.


또한 당시는 심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지금보다도 더 쉬쉬하는 시기였고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돌봐야 한다는 개념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부모님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들도 있었겠다'에서 시작해서 내 분노를 달래주라는 의미이지요.


이런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지속적인 분노와 원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에 우리의 부모님에게서 겪은 상처를 치유해 줘야 합니다.

치유의 방향은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말과 행동을 해주기'입니다.


어린 시절 내가 상처받았을 때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보통은 상처에 대한 공감, 위로, 그리고 적절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원래는 부모님이 이 역할을 해 주었어야 했지만

상처를 준 그들이 이 역할을 제대로 충분히 해줬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나라도 공감과 위로, 그리고 적절한 조치를

지금이라도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 째 딸이니까 잘해야 한다 등 아이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라면

저라면 이런 말을 하며 상처를 치유해 줄 것 같습니다.


첫 째 딸로 사느라 너무 큰 압박이었겠다. 네가 원해서 첫째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고생이 너무 많았어. 늘 모범을 보이고 좋은 모습을 보이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 부모님도 참 너무하셨다. 너도 고작 초등학생 정도였을텐데 그때부터 너에게 바카라임감을 요구하시다니. 네가 첫 째 역할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넌 있는 그대로 너무 이쁘고 착한 아이야. 그동안의 짐을 이제는 내려놔도 괜찮아.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너 자체로 사람들에게 나아가도 충분해.


이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여러분을 치유할 수 있는 존재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그 소중하고 예쁜 여러분의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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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나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아마도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사려 깊은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것입니다.


나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아도 내 아이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나의 상처들을 떠올리고

그 일을 내 소중한 아이가 겪었다고 가정하고

따뜻한 공감과 위로 조언을 해 주면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번에는 안 되고 여러 번 반복해야 하지만요.


부모님과 '정말' 다르게 하고자 한다면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고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1) 상처받은 그대로 아이를 키운다.

2) 내가 받은 상처를 아이에게 절대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사랑을 듬뿍 준다.


2)번 방향으로 가는 훌륭한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대에서 상처의 굴레를 끊고 아이에게 사랑을 주겠다 다짐하는 분들이죠.

이 모습도 훌륭하지만, 저는 우리에게 한 가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과 다르게 양육하기를 넘어서

부모님과 다르게 '살기'를 실천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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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방식만 다르게 할 게 아니라

부모님이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챙기지 못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우리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즉,

-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 감정을 성숙하게 풀어내고

- 과도한 의무를 지며 살지 않고

- 타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않고

- 스스로의 불안을 잘 챙겨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는 날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결국 교과서인 우리를 보고 자라고

우리가 편안하거나 행복하지 못하면

아이 역시 편안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도 집중해야 합니다.


나를 치유하고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부모님의 상처에서 벗어나 부모님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해소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길이 혼자서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심지어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를 위로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늘 나를 괴롭히던 일진 같은 녀석을

'이제부터 좋아해 봐' 같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중재자/선생님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사실 쟤는 이러저러한 일을 겪어서 지금까지 너에게 아픈 말을 했단다.

이제는 반성했고, 정말 너랑 잘 지내고 싶대~

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화해가 좀 더 수월하겠지요.


저는 그 역할을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상처가 많은 분들

그로 인해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분들을 도와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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