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보다는 아들을 원했던 가부장적 슬롯의 아버지들은 아내가 아들을 낳으면 크게 기뻐했다. 슬롯가 아들의 가치를 딸보다 더 크게 쳐주던 시대였다. 아들을 갖게 된 아버지들은 꿈이 있었다. 아들과 대중목욕탕에 가서 아들이 아버지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다. 나도 그런 꿈을 가졌었는데, 꿈의 실현은 한 손의 다섯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셀 수 있는 정도였다. 이즈음 동네 목욕탕을 가면 욕탕 안에서 지팡이 짚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목욕하는 어르신들을 제법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들 덕을 보고 있는 어르신이다.
아버지들은 성장한 아들이 독립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꿈꾼다. 독립하지 못한다면 아들이 행복할 수 없다. 아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아버지는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결정론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데, 아들이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 상당한 부분은 아버지의 바카라임이다. 아들의 유전자의 반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 안에 의존적인 성향이 있을 수도 있고, 20여 년간 아들이 커가는 과정의 양육환경이 너무 좋아서(?) 일수도 있고, 아들을 키우는 동안 아버지가 역할을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들에게만 모든 탓을 돌릴 수 없다.
유전자의 반을 주었고 아버지가 만든 환경에서 아버지가 키웠으니 말이다.
최근에 아들과 대화를 하던 중에 아들이 다이빙 강사가 되어 다이빙샵( https://sangsangbadang.com/ )
을 운영하며 살게 된 최초의 씨앗이 무엇인지 알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패키지 해외여행이 한창 유행일 당시, 에어텔이란 여행상품이 있었다. 에어텔이란 항공권과 호텔숙박만을 묶어서 파는 상품이다. 괌의 힐튼호텔에서의 3박인 상품을 내가 신문의 하단광고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전화로 예약하여 아들과 둘 만의 여행을 떠났다. 어릴 적 별명이 '꼭 껴' 내지 '다 껴'였던 한 살 위의 딸을 어떻게 떼어놓았는지는 기억 안 난다.
괌의 힐튼호텔 바로 앞바다에서 둘만의 스노클링을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고 제법 헤엄쳐 나가 소위 블루피시를 보았다. 영롱한 코발트블루의 작은 물고기 떼를 나도 난생처음 보았으니 아들도 당연히 첫 경험이다. 그날의 경험이 아들을 결국 스쿠버다이빙 강사의 길로 이끌었다.
여느 아버지들처럼 나도 아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쳤고, 스키 타는 법도 가르쳤고, 자동차운전도 가르쳤다. 아들이 자동차 디자이너로 회사를 다닐 때, 3년이란 기한이 지나 기숙사를 나와야 했다. 봉천동에 원룸을 부모와 상의하지 않고 1억 원의 대출을 받아 자신이 얻었다. 그때 딸이 아들에게 말했다. 왜 엄마 아빠와 상의하지 않고 너 마음대로 얻었냐고? 아들의 대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빠한테 돈 받아서 원룸을 얻으면, 아빠 잔소리를 한참 들어줘야 하잖아!"
내가 그렇게 잔소리하는 아빠라고 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아들은 기숙사에서 회사 다니던 시절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작은 배를 샀다. 배를 소유했던 2년 동안 아들과 바다낚시를 수십 번 갔다. 낚싯바늘에 지렁이 꾀는 것을 겁나게 싫어해 낚시 취미는 일도 없던 내가 광어와 우럭을 낚아 올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이빙숍 '상상바당'을 작년 여름에 오픈한 이후 가을에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다. 오픈워터를 지나 어드밴스드 자격증까지 상상바당에서 땄다. 그리고 지난 4월에는 필리핀 보홀의 발리카삭에서 첫 해외원정다이빙을 아들과 함께 했다. 아들은 내게 바다낚시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지금은 스쿠버다이빙을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고 운전연수를 시켜주듯이...
아들과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다. 나는 진정 행복한 아버지다.
엊그제 동네 목욕탕에서 본 어르신처럼 내가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면, 아들이 부축해서 목욕탕에 데리고 가줄까? 무척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