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부산 북토크를 갔을 때, 가장 먼저 한 건 부캉이 보러간 일이었다. 사실, 기차를 내리기 전에만 해도 부캉이를 볼 생각도 없었고, 부캉이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버지가 플랫폼에 있었고, 아버지는 나에게 "아들, 부캉이 보러 갈래?"라고 했다. 시간이 좀 있었다. 갑작스러웠지만, 아버지는 지나가는 아줌마한테 물어봤더니 그냥 걸어서 가면 된다고 했다고, 보러 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부캉이를 보러가게 되었다.
수십 번, 수백 번은 온 부산이었지만, 부산역에 내려 구름다리를 건너 '북항'이라는 곳에 간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정말 그 때 만큼은 아주 신비롭고 새로운 관광지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그것이 사람이 만들어내는 힘 같은 게 아닐까. 모두가 약간 들떠 있고, 부지런히 오가고 있고, 서둘러 부캉이를 보자고 조르는 아이들과, 부캉이 한 번 봤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니, 어쩐지 설레고 하늘이 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캉이가 어디 있는지는 너무 쉽게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여의도 불꽃축제 인파마냥 비인간적인 인파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부캉이가 한두번 오가는 걸 보면 금세 자리를 비우는 듯했고,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고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부캉이라는 게 뭐 하루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보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부캉이는 뭐 거의 하루종일 있는 듯했다. 이내 저 멀리서 물살이 거대하게 V자 모양으로 갈라지며 오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무슨 상어가 아니라 사람이 보트타고 오는 줄 알았다. 그만큼 물살이 선명하게 갈라졌고, 속도도 제법 빨랐다. 부캉이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자 사람들은 '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 순간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사실 부캉이 부캉이 하지만, 뭐 그렇게 엄청나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늘 반복되는 이 삶에서 무해한 이벤트 하나가 생긴 것이 반가운 것이다. 가볍게 반갑고, 가볍게 사랑하고, 가볍게 즐거운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치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잠깐 웃을 수 있는 게 좋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야, 상어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의 존재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샥스핀 요리를 맛있게 먹는 사람도 많고, 양식 광어 한 마리나 부캉이나 생명체로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본디 인간사의 모든 것은 맥락이다. 부캉이라는 맥락이 등장한 것이고, 사람들은 그 맥락을 사랑한다. 상어가 나타나서 서식할 리 없는 곳에, 참 놀랍게도 상어가 왔고, 그 상어가 또 신기하게도 사람들 앞에서 신나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이제 모두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부캉이가 상어라는 생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부캉이라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잠시 부캉이를 구경하고 아버지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왜 자기만 두고 부캉이 보러 갔냐고 성화였다. 사실, 아이 데려오려고 며칠 전부터 계속 기차표를 봤는데, 도통 두 자리가 나질 않았다. 결국 보고 싶어하던 아이 대신 나만 부캉이를 본 셈이 되었다. 이것도 참, 맥락이면 맥락이다. 아버지가 대뜸 기차역으로 나오겠다고 했고, 기차에서 내린 날 보자마자 "보캉이 보러 가자!"했고, 나는 그 우연에 이끌려 저 부캉이가 추운 겨울이 되기 전, 이 땅에 머물 마지막 시간에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환상슬롯> 북토크에 가서, 요즘 SNS로 떠들썩한 '환상'인 '부캉이'를 보고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처럼 우리가 SNS 속 환상과 이미지, 유행에 취약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다들 웃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환상슬롯의 주민이다. 그게 또 삶이고 말이다. 다만, 변명을 하자면, 거기에는 아무래도 '아버지'라는 맥락이 있었다.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이 대신 아버지 손을 잡고 봤던 부캉이. 그것은 사실 SNS 속 환상을 향한 열광 보다는, 다시 없을 내 삶의 맥락에 놓여 있는, 잠시 아빠 손을 잡은 어린 아이가 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