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대립으로 들려주는 페르시아 이야기

페르시아 신화 <샤나메>

byJino

신화를 좋아하는 나지만 페르시아 신화는 읽을 생각을 못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슬람전을 볼 때 세밀화가 잔뜩 들어간 <샤나메>를 인상 깊게 보기도 했고 올해 박물관 <팝업! 아시아> 전을 하다 보니 이곳의 신화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샤나메>는 왕을 뜻하는 ‘샤’와 바카라을 뜻하는 ’나메‘가 합쳐진 것으로 ’ 왕의 바카라‘이란 뜻이다.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대비되곤 하는 페르시아 시인 아볼 카셈 피르다우시가 975년부터 시작해 35년여 세월에 걸쳐 완성한 6만 구절의 대작이다. 페르시아 구전 전통과 10세기말 살해당한 시인 다퀴퀴의 시들을 참고해 엮었다. 이란의 건국에서부터 사산왕조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네 왕조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두 왕조는 가공의 왕조다.


샤나메가 흥미로운 이유는 페르시아 고대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신화가 전개되는 내내 선과 악의 대립과 투쟁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영웅의 도움으로 위기를 지켜낸 왕이 사소한 계기로 영웅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식이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는 장면들 속에서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은 또 상당히 인간적이어서 몰입하게 된다.

<샤나메>는 화려했던 페르시아 문화의 결정체이며 중세 페르시아어로 집필되어 언어학적인 가치도 높다. 7세기 페르시아가 아랍에게 정복된 이후 전통문화 부흥에 앞장선 사만 왕조 만수르 왕자의 후원으로 집필되었지만 990년 튀르크의 가즈나 왕조가 들어선 이후 술탄 마흐무드에게 헌정되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았다. 신화 속 이란과 투란이 페르시아 대 튀르크로 해석될 여지가 커서였다. (샤나메에서는 이란과 튀르크와 중국이 원래 하나의 뿌리였다가 갈라지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고 실제 이란과 튀르크 갈등이 이야기의 주된 갈등이기도 해서 술탄 마흐무드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흐무드는 약속했던 금화 포상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은화를 보내 피르도우시를 모욕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피르도우시는 고향인 투스를 떠나 망명을 해야 했다고 한다. )


이제 겨우 바카라 한 권 읽고 할 말은 아니지만 신화로 한 문화권에 대해 알아가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밤과 낮의 변화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홀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는 왕을 보며 한탄하는 지혜로운 영웅들, 영웅을 키워주는 신비로운 새의 이야기, 악마의 꾐에 빠져 어깨 양쪽에 하루에 두 사람의 뇌를 먹어야 하는 괴물뱀을 달게 된 왕의 이야기…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알아왔던 이야기들과는 사뭇 다른 상상력의 장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열여덟 명의 아들 중 열일곱 명의 아들을 잃자 괴물도 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항하는 대장장이 카와(이 바카라에서는 카와로 표기되고 카베로도 많이 쓰인다)가 다른 어떤 영웅보다 멋있었다.


이슬람교가 그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되지 않았다면, 페르시아 전통문화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면 지금의 이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다지만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바카라 내용을 대략 정리해 본다. (고유 명사는 표기법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필사본 이미지는 위키미디아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퍼블릭 도메인을 사용했다.


카이우메르스는 페르시아 최초의 왕이다. 카이우메르스로 인해 사람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의 규범을 세웠고 그는 큰 존경을 받았다.

악의 신 아리만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아들인 악마에게 그를 파멸시킬 것을 명령했고 악마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천사 오르마즈드와 자식들을 지키는 세로슈는 요정의 모습으로 카이우메르스에게 경고했고 카이우메르스는 사이아묵을 보내 제압하려 했지만 패배했다.


1년 뒤 카이우메르스는 사이아묵의 아들 후셍에게 악마와 싸울 것을 명했고 후셍은 악마에게 이겼고 카이우메르스는 이 승리를 보고 세상을 떠났다.

후셍이 세상을 다스렸다. 그는 돌에서 불을 끌어내는 법을 알려주며 인간에게 최초로 불을 주고 곡식을 재배하는 법을 알려줬다. 후셍의 뒤를 이어 아들 타후메르스도 세상을 잘 다스리고 실 잣는 법과 천 짜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악마들이 타후메르스를 해치려 했지만 타후메르스는 그들을 제압했다. 몇몇 악마가 자기들을 용서해 준다면 한 가지 기술을 알려 주겠다고 했고 타후메르스가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자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타후메르스의 아들은 젬쉬드며 그는 700년 동안 나라를 굳건히 다스렸다. 젬쉬드는 처음으로 사람들을 사제, 무사, 기술자, 농부 등 계급으로 구분했고 1년을 시기별로 나누었다. 그가 세운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오늘날까지 ‘젬쉬드의 왕좌’라는 뜻 ‘툭트에젬쉬드’로 불린다. 젬쉬드는 뉴루즈 축제를 만들었다.


이런 젬쉬드였지만 어느새 자만심을 가지게 되어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르며 경배를 받았다. 이때 아라비아 사막 타시스라는 나라에 미르타스라는 왕이 살고 있었고 그에게는 아들 조학이 있었다. 악의 신 아리만이 귀족으로 변장해 조학을 유혹했다. 아리만은 처음엔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 조학은 왕이 되었지만 완전히 아리만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조학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듣는 장면


아리만은 이번엔 젊은이로 변신해 요리사로 일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때까지 인간들은 풀과 이파리만 먹고살았는데 아리만은 살코기를 준비했고 조학은 이를 너무 좋아해 아리만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아리만이 왕의 어깨에 입맞춤을 하게 해달라고 했고 이를 허락한 순간 왕의 양 어깨에서 뱀이 솟아났다. 이 뱀들은 하루에 두 사람의 뇌를 먹어야 했다.


이즈음 젬쉬드에게 등을 돌린 왕과 귀족들이 조학을 이란의 샤로 추대했다. 조학은 100년 동안 젬쉬드를 쫓았고 젬쉬드는 해변을 걷다가 조학의 신하에 의해 몸뚱이가 둘로 갈라지는 죽음을 당했다.


조학의 사악함에 이란 국민들은 고통받았고 오르마즈드는 이 상황을 가엾이 여겨 젬쉬드의 손자 페리둔이 태어나게 했다. 페리둔은 샤의 자손인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털이 공작새 깃털처럼 아름다운 소 푸마예가 사는 깊은 숲 속에 숨었다.


페리둔이 성장할 무렵 조학 때문에 자신의 아들 열일곱 명을 잃은 대장장이 카와가 나섰다. 카와는 자신의 가죽 앞치마를 깃발로 삼아 페리둔을 찾아 나섰다. 페리둔은 푸마예를 상징하는 소머리가 얹힌 철퇴를, 카와는 자신의 가죽앞치마를 비단과 보석으로 장식한 군기를 들고 조학을 쫓아 물리쳤다.


페리둔은 덕으로 500년을 다스렸고 젬쉬드 가문 부인으로부터 세 아들을 얻었다. 아들들이 장성하자 예멘의 왕을 찾아가 세 딸에게 청혼할 것을 지시했고 아들들이 올 때 이들의 심성을 시험한 뒤 첫째를 실림, 둘째를 투르, 셋째를 이리쥐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상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석양의 땅 룸과 카베르는 실림에게, 투란과 투르키스탄은 투르에게 주어 튀르크와 중국 주인이 되게 했고 이리쥐에게는 이란과 함께 권력의 왕좌와 지상 최고의 왕관을 물려주었다.


하지만 실림과 투르는 동생 이리쥐를 시기해 동생을 죽인 뒤 늙은 페리둔에게 보냈다. 페리둔은 슬픔에 잠겨 울부짖었다.


시간이 흐른 뒤 페리둔은 이리쥐 딸을 찾아가 젬쉬드 혈통 영웅 페쳉과 결혼시켰고 그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페리둔은 아기에게 미누치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미누치르가 자라자 페리둔은 실림과 투르에게 복수의 말을 전했다. 실림과 투르는 군대를 이끌고 이란으로 향했지만 미누치르는 이들을 죽여 복수를 완성했다.


이란의 세이스탄이라는 곳은 펠리바(페르시아어로 엄청난 크기와 힘을 가진 사람을 뜻함. 샤로부터 영토를 하사 받고 전쟁 시 군대를 징집해 샤를 위해 싸움) 사움이 다스렸다.

멋진 아들이 태어났으나 머리털이 하얀 모습이었다. 사움은 운명을 저주하면서 아기를 버리라고 했다. 알베르즈 산기슭에 아기가 버려졌는데 이 산 위에는 시무르그라는 불사조 둥지가 있었고 시무르그는 이 아기를 보살폈다.


이 아기가 장성했을 때 사움은 이상한 꿈을 꾸었고 무비드(점성술가이자 현자)들은 자식을 거부한 걸 꾸짖는 꿈이라고 했다. 사움은 아들을 찾아가 잘못을 빌었고 데려와 잘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잘은 지혜와 힘으로 명성을 얻었다.


잘의 탄생

잘은 뱀왕 조학의 자손 미흐랍의 딸 루다베와 사랑에 빠졌고 아버지와 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결국 잘 극복해 결혼에 이른다. 잘에게서 아들 루스템이 태어났다.

루스템이 소년이었을 때 궁전의 하얀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소동을 일으켰다. 루스템은 막무가내로 코끼리를 제압하겠다고 나서서는 두려움 없이 제압했고 그의 용맹함은 온 나라에 소문이 났다.

루스템의 탄생. 1560-80.


그때 백스무 해를 살아온 샤 미누치르는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나우데르에게 지혜의 길을 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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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세계인형박물관(www.worlddoll.net) 학예사 / <인형의 시간들(바다 출판사 발행)> 저자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바다출판사 발행)>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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