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할래?"
명절이었다.
그의 그녀와는 정말이지 안 맞다 싶었다. 누군가 봤을 때 이해 할 수 없겠지만, 그 자리에 아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마구잡이로 밟고 싶었다. 이 마음이 든 이상 이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겠다 싶었다.
더는 참을 자신이.
버텨낼 자신이.
"이혼할래?"
까만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그와 나는 4인용 소파의 양쪽 끝에 앉아 있어 그의 표정을 볼 순 없었다. 상상하면 상상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떤 말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혼의 이유가 날 선 칼로 깔끔하게 재단된다면 모든 부부들이 이혼율이 높지 않았겠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얽히고설켜 그 감정이 더 이상 감당 할 수 없을 때 하는 것이 이혼일 테니까. 이혼을 말하기 며칠 전, 아니 명절이 다가오기 전 그에게 말했었다.
"나는 그날 이후 단 1초도 흘러가지 않았어.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시간만 흘렀다고.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어."
이 말이 싸움이 될지 알면서도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그녀가 있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인 마음이 폭풍이 몰아치듯 터지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그녀와 이런저런 말을 나눴지만, 지금은 입을 닫고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나를 그녀 앞으로 꾸역꾸역 데려가고 싶어 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는 순간까지 아내와 며느리가 될 수 없는 그 역시 나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겪어보지 않는 일들을 가늠해 볼 수는 있겠지만 완벽한 이해라는 것은 없으니까.
치밀어 오르는 이 감정이 버거워 고개를 돌려 베란다 너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응시했다. 평소 거실을 울리던 풀 벌레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숨죽여 그와 나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이 구구절절 다 맞다. 그렇다고 내가 틀린 것도 아니지만, 나는 틀려야 했다. 아내인 나는 그런 위치였다. 그가 나쁘다고 말하기엔 그는 좋은 사람이다.
네게 과분할 만큼.
그냥 슬롯의 구조가 그렇다.
결혼한 여자에게는 슬롯에서 부여한 기본적인 의무가 생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의식주를 챙기는 것. 결혼한 남자가 가끔 의식주를 챙기기라도 하면 '선의'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맞벌이를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큰 이견이 없다. 나의 문제는 결혼한 여자의 슬롯가 부여한 또 다른 기본적 의무인 시가를 챙겨야 하는 일이다. 아직도 아들이 결혼을 하면 없던 제사와 차례가 생기는 글들을 종종 보곤 한다. 백번 양보해 제사와 같은 허드렛일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가 모두가 나를 가장 아래에 아래. 막 대해도 되는 아랫사람 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사람의 태도, 언어, 말투, 단어에 민감하다.
내가 이 사람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매번 예의에 벗어나는 태도와 언어, 말투, 단어를 기약 없이 일방적으로 참아야 하는 상황이 넌덜머리가 난 것인데 그는 내가 제사 같은 일들이 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나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든, 하대를 하든 그의 입장에서는 일 년에 몇 번 가지도 않는 그 시간이 그렇게 힘드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 나를 슬프기 했다.
그런 일들을 치르고 나면 "고맙다고 말하지 않느냐." 그가 나의 아버지 제사를 준비하지 않는 것이 흠이 아니듯, 그들이 내가 자라는 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가 제사를 지내주어야 할 의무가 실은 없다. 다만 그를 낳고 길러준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제사와 생신으로 내가 함께 하는 것인데, 매번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노력하는 쪽에서 고맙다는 말, 수고했다는 말은 다 개소리다. 그런 말들은 서로가 주고받아야 그 마음이 오고 가는 법이니까.
하물며 거지에게도 그렇게 적선하지 않는다.
그와 좁혀지지 않는 이 간극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쳐나가는 상상을 했다. 낮 시간 동안 짐을 싸 찾을 수 없게 숨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내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 때문에 참고 사는 그런 맥락의 이유는 아니었다. 이 집을 내 발로 나가더라도 아이에게 설명하고 나가는 것이 아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그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를 짓밟는 데도 그게 문제인지 모르는 게 그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물론 여자로 사는 삶과 남자로 사는 삶이 다르기에 생긴 일이고, 그도 뒤늦게 무엇이 문제인지 조금 인지하긴 했지만 너무 멀리와 버린 기분을 떨쳐 낼 수 없다.
그와 말하는 동안 산을 계속 바라보았다.
달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달도 없이 형체만 드러나 보이는 볼품없는 산이 나 같았다. 병들면 드는 대로 곪아 썩어 죽어가는 저 소나무가 나 같았다. 베어버리면 베어지는 대로, 꺾으면 꺾는 대로 몸통을 내줘야 하는 저 들판의 풀들이 나 같았다. 밟으면 찍소리 않고 밟혀 죽어야 하는 벌레가 나 같았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작년 내가 절망사를 적어 내려갔던 건 내가 버틸 합당한 이유가 필요해서였다.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그래야만 했다. 감춘다고 감추었지만, 텍스트는 나를 완전히 감춰 줄 수 없었다. 들켜 버린 순간이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그렇게 울었다.
사랑해서 헤어지자는 건
다
개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