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낸 자리에 채워진 것들
내 삶에 불시착한 병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숙제는 다름 아닌 '매일 의 밥상'이었습니다. 지친 몸을 온전히 살피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동안 식탁 위를 차지하고 있던 익숙한 것들을 과감히 비워내기로 했습니다.
"고기와 밀가루, 그리고 하얀 설탕,
우유 및 유제품, 해산물
가공식품, 조미료"
염증을 가라앉히고 자연스러운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식탁 위를 싹 비워내기로 했습니다. 건강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동안 혹사시켰던 내 몸에 건네는 늦었지만 간절한 사과였습니다.
귀찮다는 핑계로 라면이나 빵, 과자로 허기를 달래던 날들, 불규칙한 일상과 스트레스가 내 안의 생기를 조용히 갉아먹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레 늘어난 약봉지들은 낫기 위한 방편이었음에도 도리어 몸을 짓눌렀고, 한 곳을 치유하는 약의 이면에는 다른 곳을 힘들게 하는 반작용이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가공되지 않은 가장 신선하고 자연스러운 위로였습니다.
그래서 설탕과 밀가루마저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비건식을 시작했습니다. 가공식품과 조미료는 물론이고, 고기와 해산물, 유제품, 그리고 혀를 유혹하던 화려하고 자극적인 양념들을 모두 거두어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덜어낸 밥상이 혹여나 너무 초라하고 밍밍한 맛을 견뎌야 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워낸 자리에서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자극이 사라진 빈 공간에는, 그동안 미처 감각하지 못했던 재료 본연의 담백하고 깊은 맛이 조용히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몸에 맞는 건강한 재료를 다듬고 정성껏 요리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번잡했던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치유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몸을 되살리기 위해 덜어내고 비워낸 식생활은, 잃어버렸던 미각을 깨우고 요리하는 즐거움과 온전하게 먹는 기쁨을 배가시켜 준 내 삶의 따뜻한 기적이 되었습니다.
기름지고 무거운 고기 요리들을 식탁에서 밀어내는 대신, 무·마른 표고버섯·대파 뿌리를 뭉근하게 우려낸 맑은 채수를 사용하고 정성껏 달여 만든 양념간장을 그 위에 한 스푼 곁들입니다.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는 강렬함은 없을지라도, 몸속 깊은 곳부터 은은하게 온기를 피워 올리는 깊고 맑은 감칠맛이 그 빈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줍니다.
밀가루 특유의 바삭함과 찰기가 아쉬운 날엔 쌀가루와 전분을 꺼냅니다. 밀가루 반죽처럼 화려하게 부풀어 오르진 않지만, 기름을 두른 팬 위에서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쌀가루는 투박하고 정직한 고소함을 냅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도 결코 속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는, 편안하고 고마운 식재료입니다.
무엇보다 주방에서 가장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은 단맛을 내는 일입니다. 혀끝을 날카롭게 찌르는 하얀 설탕을 치운 대신, 재료가 원래부터 품고 있던 본연의 단맛을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양파를 오래 볶아 끌어낸 짙은 단맛, 제철을 맞은 뿌리채소가 머금고 있는 흙의 단맛 같은 것들 말입니다. 조금 더 달콤함이 필요한 날에는 정성스레 졸여낸 조청을 한 숟갈 덜어 넣습니다. 조청의 단맛은 서두르는 법 없이, 다른 재료들의 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줍니다.
비워낸 식탁은 결코 결핍을 버텨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연 본래의 힘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이 되려 충만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덜어내고 비워낸 매일의 식탁 위에서, 제 몸은 매일 조금씩 더 가벼워지고, 맑아지고, 단단해집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맑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한 끼의 식사를 통해, 결핍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충만함으로 새롭게 채워질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나를 갉아먹던 자극들을 비워낸 자리에 조용히 피어난 이 다정한 회복의 감각이, 오늘 하루 고단한 일상을 묵묵히 견뎌낸 당신의 식탁 위에도 따뜻한 위로로 스며들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