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같은 여자, 흙 같은 남자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걸까

by만석맘 지은

* 혹시 기다렸을지도 모르는 독자님께, 죄송하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주부터 다시 열심히 연재해 보겠습니다.


딱 한 번 본 궁합


사주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인생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해보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혼 전, 딱 한 번 궁합을 봤다.

일생에서 가장 큰 변화라는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한 번쯤은 봐야 할 것 같았다.

철학관에서는 남편과 나, 서로 성향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혼이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야 궁합이 좋은 거라고 했다. 그래야 톱니처럼 잘 굴러간다고 했다. 오히려 똑같은 사람은 연애할 때는 재미있지만 결혼 상대는 아니라고 했다. 일리가 있었다.


남편과는 크고 작은 일로 싸우고 화해하곤 했다. 싸울 땐 밉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남편과 결혼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결혼생활이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반복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렇게 이십 년을 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남편이 낯설다.

분명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식탁에 앉고, 아이들 이야기를 함께 하는데 문득 궁금해진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집사람


얼마 전 지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 남편이 나를 '집사람'이라고 불렀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라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그 단어는 충격적이었다.

집사람.

우리 부모 세대에서나 쓰는 호칭이었다. 까마득한 온라인 게임 선배가 쓰는 걸 들은 것도 같다.

남편도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된 걸까.

그 단어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나까지 나이 든 사람이 되었다.


그 후로도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참다못한 어떤 날, 남편에게 말했다.

"나를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거 싫어."

다른 사람은 부인을 '와이프'라고 부르는 걸 남편은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나에게 낯선 그 단어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몇 번 반복되던 어느 날, 이번에는 따져 물었다. 처음에는 안 그랬다며 잡아뗐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예전에도 나를 그렇게 불렀던가.

왜 그때는 못 느꼈을까.

한번 의식하고 나니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유난히 귀에 꽂혔다.

말 그대로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남편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물과 흙


문득 우리 궁합이 궁금해졌다.

철학관이나 점집에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AI에게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흥미로웠다.

나는 임수(壬水), 남편은 기토(己土)라고 했다.

나는 큰 강이나 바다 같은 물이고, 남편은 밭을 일구는 흙이라고 했다.

오행으로 보면 흙은 물을 제어하는 관계라고 했다.

하나는 흘러가고, 하나는 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다른가?'


나는 호기심이 많다.

무언가를 보면 금세 다른 생각이 따라온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 방법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한 가지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새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물처럼 생각이 흐른다.


그런데 남편은 다르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돈은 얼마나 드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나는 미래를 보고, 남편은 현실을 본다.

나는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고, 남편은 감당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그 차이가 참 답답했다.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이 많은데, 남편은 현실에 안주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남편은 내가 벌이는 일이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기다려줘


내가 아이들과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남편은 먼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따졌다.

미국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고 했을 때도 온라인 게임을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내가 새로운 제안을 할 때마다 남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답답했다.

남편은 말했다.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될 거야. 다만 내가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려 줘."


남편은 반대한 것이 아니라 신중했을 수도 있다. 바카라임감도 강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으리라. 어쩌면 남편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 시간을 줘야 했으리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도 답답한 건 답답했다. 기다리며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들여다볼수록 다르다


우리가 다르다는 증거를 하나씩 모아 본다.

달라서 너무 힘드니 각자 살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와 나,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른 지, 그런데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앞으로도 함께 갈 수 있는지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가 괜찮다는 단서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과 흙이 서로 방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흙은 물길을 만들고, 때로는 둑이 되어 물이 넘치지 않게 한다.

반대로 물은 흙을 적시고, 굳은 땅을 부드럽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만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내가 여기까지 흘러올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이 그 자리를 지켜준 시간이 있었다.

어쩌면 오래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그때는 젊었고, 기다릴 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나도 조금 지친다. 20년을 살면서 남편의 속도를 많이 기다렸다. 그가 걱정하면 설명했고, 망설이면 기다렸다.


이제는 남편이 나를 믿어주면 좋겠다.

어차피 들어줄 거, 때로는 버티지 말고 들어주면 좋겠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더 확인하려 하지 말고,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우리가 백년해로한다면, 앞으로 남은 오십 년은 조금 달라져도 좋겠다.

우리가 다르다는 건 여전히 변하지 않더라도, 이번에는 나를 중심으로 조금 흘러가보고 싶다.

그 길에 남편도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물이 흘러가는 방향도, 이제는 조금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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