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어디를 가든 사진을 찍었다. 사라지는 시간과 기억이 안타까워서였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그래서 그 시간을 사진 속에 가두었다. 흘러가지 않게, 사라지지 않게.
시간은 사진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내내 그 사진들을 활용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글과 사진으로 남았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며 사진을 찍는 일은 현저하게 줄었다. 아이들은 카메라 렌즈를 피해 다녔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 역시 사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이후로 간간히 찍는 사진 속 주인공은 공간이거나 사물이거나 식물이 되었다.
대다수 시간은 그렇게 사진 속에 담기지 못하고 흘러갔다. 기억 속에 담으면 되지,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기억은 퇴색될 뿐 저장되지 않았다.
이제라도 다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은 마틴 파의 전시를 보고서였다. 작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회고전이 되었다는 전시는 "어떤 장면을 선택해 찍는가"보다도 "수천 장 가운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는가"가 작업 스타일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자료가 방대했다. 작가 생활 50여 년 동안 제작한 사진바카라만도 150여 권에 달한다니 찍은 사진은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는 작고하기 넉 달 전 '더 가디언'과 나눈 인터뷰에서 "맥락 없이도 혼자 살아남는 사진"이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진이라고 말했는데, 대다수의 사진에서 그런 가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진이 전혀 미학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나마 흑백의 초기작들과 몇몇 컬러 사진에서 그의 말에 부합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주유소 같은 평범하고 매력 없는 대상을 촬영하는 것을 두고 당시에는 '미친 짓'이라 여겼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은 주유기, 옷차림, 자동차 등이 모두 변해 당시의 소비주의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 된다."
이 말이 자극이 되었다.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다시, 사진을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