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파동, 예술이 의식이 되는 순간
작품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언제나 생각부터 하는 것은 아니다.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색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낯선 형상에서 오래전의 얼굴을 떠올리고, 텅 빈 여백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 것일까.
지난 글에서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작품인가, 관람자인가.”
오늘은 그 질문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보고자 한다.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작품에 반응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그것을 ‘무의식의 파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작품의 표면에는 색과 선, 형태와 재료가 있다. 그러나 작품은 눈에 보이는 형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아래에는 작가의 기억과 감정, 꿈과 상징, 상처와 욕망이 흐른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흔적과 반복도 남아 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의식을 빙산의 작은 부분으로 보았다. 우리가 알고 선택하는 생각 아래에는 잊힌 기억과 억눌린 감정으로 이루어진 개인무의식이 있고, 더 깊은 곳에는 인류가 오랜 시간 공유해 온 집단무의식이 존재한다.
개인의 경험은 깊어질수록 한 사람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어머니, 영웅, 그림자, 원, 길과 같은 오래된 상징을 만나고, 결국 ‘나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과 연결된다.
작가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길어 올린 형상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관객에게도 낯익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예술가를 무의식의 바다에서 금을 건져 올리는 광부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내면에서 떠오르는 직관과 우연, 충동을 그대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선택하고 반복하며 색과 선, 재료와 구성으로 변환하는 사람이다.
무의식의 원재료가 예술가의 손을 통과해 하나의 형식을 얻을 때, 보이지 않던 내면의 움직임은 비로소 작품이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두 얼굴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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