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더 이상 중심이 아닐 때 — 포스트휴먼 미학의 서막
When Humans Are No Longer at the Centre — A Prologue to Post-Human Aesthetics
김남효 교수 / 아트코리아 why포럼 대표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작품이 먼저 당신을 ‘인식’한다.
당신의 체온, 심박수의 미세한 리듬, 오늘 아침 창문을 통해 스며든 햇살의 온도,
심지어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흘린 한숨과 그 한숨 속에 스며든 어제의 기억까지도 작품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작품은 더 이상 당신을 기다리는 정지된 물건이 아니다. 당신과 작품,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공기, 빛, 알고리즘, 미생물, 지구의 중력, 먼 곳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기후 변화, 나아가 작품을 둘러싼 다른 관객들의 발걸음 소리까지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나’라는 인간은 더 이상 관객도, 창작자도, 주인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서로를 다시 구성하는 살아 있는 관계가 된다. 이 조용하면서도 깊은 떨림 속에서, 예술은 우리에게 가장 부드럽고도 근본적인 초대를 건넨다. 이것이 포스트휴먼 시대, 크로스오버 아트가 열어가는 새로운 장(場)의 시작이다.
앞선 글에서 관객을 ‘수동적 감상자’에서 ‘공창(共創)의 동반자’로 끌어올렸다. 작품은 작가의 독백을 벗어나 관객의 존재, 감정, 이야기와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우리는 ‘소유의 대상’이 아닌 ‘존재의 동반자’라는 따뜻한 관계를 발견했다. 그 공감과 공창의 미학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만남조차도 아직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인간이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닐 때,
예술은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가?
이 물음이 바로 포스트휴먼 미학(Posthuman Aesthetics) 의 서막이다.
포스트휴먼이란 ‘인간 이후’라는 시간적 개념만이 결코 아니다.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의 깊은 해체이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사유의 전환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생물학자인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저서 《트러블에 머무르기(Staying with the Trouble)》 를 통해 현대 인류에게 매우 불경하면서도 매혹적인 선언을 던진다. 그녀는 "우리는 모두 퇴비(compost)이다. 우리는 서로를 먹고, 서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라고 말하며 인간을 고귀한 단독 주체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흙바닥의 질척이는 생명력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군주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과 뒤섞여 썩고 발효되며 새로운 삶을 빚어내는 비옥한 토양의 일부라는 고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녀가 제안한 ‘Make Kin’은 혈연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선 이종(異種)과의 친족 만들기다. 인간은 더 이상 고독한 주권자가 아니라 AI, 미생물, 기후, 동물, 식물, 그리고 디지털 알고리즘과 촘촘하게 뒤엉켜 있는 ‘공동-구성체(assemblage)’로 존재한다.
해러웨이는 우리에게 "Make Kin, Not Babies"라고 속삭이며 인구 과잉과 환경 파괴로 신음하는 지구에서 종족 번식에 매달리기보다 새로운 관계의 지평을 넓힐 것을 권유한다. 이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산아 제한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간 중심주의적인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고 종을 가로지르는 기묘하고도 다정한 연대를 맺으라는 뜻이다. 그녀의 초대는 따뜻하면서도 날카롭다. 우리가 마주한 기후 위기와 기술적 대변동이라는 ‘트러블’을 회피하거나 막연한 낙관론에 기대지 말고 그 혼란의 한복판에 머무르며 함께 살아남는 이야기를 엮어가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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