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참견시점 (The Moment of Artistic Interv
The Variability of Aesthetics of Reception and the Spatiality of Non-Action in Laozi and Zhuangzi
김남효 교수 (동서양디자인연구소)
상상해 보세요.
어두컴컴한 갤러리 한가운데, 하얀 벽에 걸린 단 한 점의 단색화 앞에 선다.
캔버스는 거의 비어 있다.
색 한 점, 선 한 줄 제대로 그려진 것이 없는데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왜인가?
그 순간 작품은 더 이상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관객인 우리의 시선, 호흡, 기억, 감정이 빈 공간을 채우며 비로소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대 예술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짜릿하고도 근본적인 반전이다.
오랫동안 서구 미술사는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작가의 천재성’과 ‘형식적 완결성’에만 귀속시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예술의 주도권이 작가의 손끝에서 관객의 의식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인식론적 전회가 일어났다. 작품의 진짜 주인은 이제 ‘너와 나’, 즉 수용자가 되었다.
수용미학(Aesthetics of Reception)은 1960년대 독일 콘스탄츠 대학의 문학이론가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Hans Robert Jauss)와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그들은 기존의 ‘작가 중심’이나 ‘작품 자체 중심’ 미학을 넘어,
작품의 의미는 ‘수용자’의 해석 행위 속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야우스는 관객이 가진 ‘기대지평(Erwartungshorizont)’이 작품을 만나면서 변형되고 확대된다고 보았으며, 이저는 작품 속에 의도적으로 남겨진 ‘빈 곳(Leerstelle)’이 관객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고 설명했다. 이 이론은 1968년 학생운동 이후 유럽 슬롯에서 ‘수용자·대중의 목소리’가 중요해진 시대적 흐름과도 맞물렸다. 예술은 더 이상 신성한 작가의 독백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대화가 되었다.
여기서 동양 철학을 들여다보면 더욱 흥미롭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를 강조한다. 억지로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의 철학이다. 이는 물처럼 부드럽게 세상을 따르는 태도이며, 예술에서는 ‘과도한 개입을 삼가고 본래의 본성을 드러내는’ 미학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간의 욕망과 목적의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우주의 거대한 질서인 자연(自然)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삶의 태도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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