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hift from ‘Technique’ to ‘Being’, fro
A Shift from ‘Technique’ to ‘Being’, from ‘Intellect’ to ‘affect ‘in Contemporary Art: A Study on Ontological Reflection and the Affective Turn Beyond Technical Proficiency
동서양디자인연구소 김남효 교수
동시대 미술은 지난 수십 년간 지배적이었던 기교 중심의 형식주의와 지적 유희에 매몰된 개념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를 기술적 숙련(Technique)에서 예술가의 존재(Being) 그 자체로, 그리고 차가운 지성적 분석(Intellect)에서 뜨거운 정동적 울림(Affect)으로 이동시키는 양상을 띤다. 과거 모더니즘과 초기 포스트모더니즘이 매체의 물질적 순수성이나 언어적 논리에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신체, 기억, 그리고 슬롯적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실존적 흔적을 작업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다.
기술에서 존재로의 이동은 창작자가 매체를 다루는 외적인 ‘솜씨’보다, 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와 취약성을 어떻게 노출하고 기록하는가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지성에서 정동으로의 이동은 텍스트 중심의 해석 체계를 벗어나, 관객의 신체와 심장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감정적 공명과 감각적 경험을 우선시하는 ‘정동적 전회(Affective Turn)’를 반영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단순히 스타일의 유행을 넘어서, 현대 슬롯가 직면한 전 지구적 위기—환경 파괴, 소외, 그리고 인간 존재의 위협—에 대한 예술적 응답이기도 하다. 본 연구보고서는 유럽, 미국, 중국, 한국의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활동하는, 개념적으로 독특하면서도 대중적으로는 아직 덜 알려진 작가들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이동의 양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예술의 가치가 ‘무엇을 어떻게 만드는가’에서 ‘예술가가 그 자리에 어떻게 존재하는가’로 이동하면서, 작업의 결과물보다는 생성의 과정과 작가의 존재론적 결단이 중요해지고 있다.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아름다움이란 대상이 단순히 나타나는 형식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서 동시대 미술가들은 기교적 완결성을 고의적으로 훼손하거나 소멸의 과정을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존재의 강렬함을 드러낸다.
폴란드 출신의 작가 파베우 마티셰프스키는 인간의 신체와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며 존재의 가변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인 보존을 목표로 하는 전형적인 미술 기법을 거부한다. 대신 흙, 살아있는 꽃, 석회와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패하고 변형되는 재료를 사용하여 ‘일시적 유기체’를 창조한다.
마티셰프스키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묘사력이 아니라, 재료가 겪는 엔트로피의 과정이다. 그는 자신의 설치 작품이 전시 기간 동안 서서히 붕괴하고 변색되도록 방치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유한성과 쇠락을 은유한다. 최근작 'Biological Composition'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피부와 식물의 형상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종을 선보이는데, 이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 자연과 신체가 하나로 얽힌 존재론적 상태를 시사한다. 관객은 매끈한 조각품 대신 흙 냄새와 시든 꽃의 질감을 대면하며, 자신의 육체 또한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감각적으로 깨닫는다.
Paweł Matyszewski, Collection 12, 2018. Mixed media, 사진출처: arterritory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알조샤는 ‘바이오이즘(Bioism)’이라는 개념을 통해 존재의 영역을 확장한다. 그의 조각과 설치물은 마치 합성 생물학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생명체처럼 보이며, 유동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를 띤다. 알조샤는 예술이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생명과 존재가 발아할 수 있는 ‘바이오토프(Biotope)’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의 작업은 정교한 설계나 기술적 계산보다는, 재료 자체의 활력(Vitality)이 스스로 형태를 찾아가도록 허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공공장소에 예고 없이 설치되는 그의 투명한 조각들은 도심의 딱딱한 건축물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생명감을 불어넣는다. 여기서 기교는 생명력을 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명이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지지대로 작용한다.
동시대 미술에서 지성(Intellect)보다 정동(Affect)이 강조되는 이유는 현대인이 겪는 감정적 소외와 관계의 단절을 예술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정동 이론(Affect Theory)에 따르면, 정동은 지각 이전에 신체적으로 발생하는 강렬한 에너지의 흐름이다. 예술가는 이제 이론적 담론으로 관객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정동적 자극을 통해 관객의 심장에 직접적인 파동을 일으킨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예술가 모닐로라 올라이예미 일루페주는 개인의 사적인 기억과 공동체의 역사를 결합하여 강렬한 정동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수집한 낡은 침대 시트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들을 설치의 주재료로 삼는다. 침대 시트는 인간이 가장 취약한 상태인 잠과 꿈, 그리고 사랑의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을 상징하며, 그 속에 밴 체취와 흔적은 존재의 증거가 된다.
그녀의 전시 'Hands Full of Air'는 이러한 시트들을 엮어 만든 ‘비밀 기지’ 같은 형태를 띠는데, 관객은 그 안으로 들어가 타인의 삶이 남긴 따스함과 연대의 정서를 느낀다. 일루페주의 작업은 지성적인 비판보다는 ‘돌봄(Care)’과 ‘보살핌’이라는 가슴의 언어를 통해 인종, 젠더, 가족사의 상처를 치유하려 시도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가죽이나 자작나무 같은 재료는 단순한 물리적 소재를 넘어, 조상의 영혼이나 억압된 목소리를 담아내는 정동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Monilola Olayemi Ilupeju, Hands Full of Air 10.12.20 – 28.03.21, 사진출처: monilola
역사학자 윌리엄 레디는 슬롯가 허용하는 감정의 폭이 제한된 상황에서 예술이 ‘감정적 피난처(Emotional Refuge)’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밀리 하스와 같은 작가들은 모더니즘이 오랫동안 배제해왔던 ‘부드러운 감정’들—사랑, 연민, 우정—을 복원함으로써 이러한 피난처를 구축한다. 과거의 미술이 충격이나 냉소적인 유머를 통해 지적인 자극을 주었다면, 이들은 진솔한 감정적 토로와 공감을 통해 관객의 정서적 회복을 돕는다.
중국 동시대 미술은 오랜 기간 국가적 이데올로기와 슬롯적 리얼리즘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집단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개인의 고유한 존재론적 내면과 철학적 사유를 정동적으로 풀어내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자오 페이즈는 인물의 외관을 재현하는 기술적 기교를 극도로 절제하는 화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밀한 묘사 대신 투박하고 뭉툭한 붓질로 표현되며, 이는 인물의 슬롯적 지위보다는 그들이 처한 존재론적 고독과 침묵을 강조한다. 자오 페이즈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과정을 ‘정서적 퇴적’이라 부르며, 이를 통해 평범한 일상의 인물들을 삶의 무게를 견디는 장엄한 존재로 승화시킨다. 그의 그림 앞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물의 눈빛과 배경의 색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억제된 인본주의적 열망과 가슴으로 공명할 때 발생한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 야펑 두안은 동양의 전통적 개념인 ‘기(氣)’를 서구의 추상 회화와 결합한다. 그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기교를 발휘하는 행위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영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그녀의 작품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지만, 색채의 미묘한 번짐과 층위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파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명상적인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이는 머리로 분석하는 추상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인 에너지와 맞닿는 정동적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의 미술 현장에서도 전통적인 기법의 숙련도보다는 그 기법에 담긴 수행적 태도와 존재론적 의미를 묻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신체적 경험이나 일상의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 존재의 비가시적인 면을 드러내는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상아는 한국화의 전통 매체인 먹(Meok)과 광목, 그리고 솜을 사용하여 존재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탐구한다. 그녀의 작업은 작가 자신이 겪은 임신, 출산, 육아라는 신체적이고 감정적인 소용돌이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먹이 물과 만나 번지는 우연한 효과를 포착하고, 이를 광목 위에 그린 뒤 가위로 오려내고 그 안에 솜을 채워 바느질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기서 바느질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상처를 꿰매고 생명을 품는 ‘돌봄’의 수행이다. 그녀가 만든 ‘부드러운 조각’들은 전통적인 청동이나 대리석 조각의 권위적인 단단함을 거부하고, 만질 수 있고 안길 수 있는 존재론적 친밀감을 제공한다. 'Void Pagoda' 시리즈는 돌 대신 솜으로 채워진 ‘가짜 석탑’을 통해, 영원한 신성함보다는 매 순간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잡으려는 인간 존재의 가냘픈 기도를 형상화한다. 한상아의 작업은 지성적인 페미니즘 담론을 넘어, 모성이라는 근원적인 정동을 통해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이승아는 거울과 같은 반사적인 재료를 활용하여 관객이 자신의 존재를 투영하도록 유도하며, 장용선은 금속 파이프나 산업용 폐기물을 연결하여 우주의 에너지 흐름을 형상화한다. 이들의 작업에서 기술적 숙련도는 사물의 본질적인 에너지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작용한다. 관객은 차가운 금속 조각에서 생명의 박동을 느끼거나(장용선), 매끄러운 표면에서 자신의 흔들리는 존재를 직면하며(이승아) 지성적 분석이 아닌 감각적 전율을 경험한다.
21세기 예술 지형에서 목격되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냉소적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지독한 지성주의에 대한 피로감이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이론의 하녀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나약함과 진실된 감정을 드러내는 ‘새로운 진실성(New Sincerity)’을 표방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예술의 ‘기교’와 ‘지성’이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알고리즘은 거장의 화풍을 완벽하게 모방하고 논리적인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의 고통이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정동적 공명을 생성할 수는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시대 작가들은 AI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 즉 ‘인간적인 취약성(Vulnerability)’과 ‘신체적 우연성’을 작업의 전면에 내세운다. 이언 맥길크리스트(Iain McGilchrist)의 신경심리학적 분석에 따르면, 현대 슬롯의 위기(Metacrisis)는 분석적이고 효율적인 좌뇌 중심 사고의 지배에서 비롯되었다. 예술은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직관적이고 통합적이며 공감 중심적인 우뇌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이동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심리적·존재론적 보정 행위인 셈이다.
이제 작가는 완성된 미학적 오브제를 관객에게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론적 공간 안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호스트(Host)가 된다. 예술 감상은 작품의 의미를 해독하는 지적 활동에서 작가와 관객이 정동의 주파수를 맞추는 ‘상호 존재의 확인’으로 변화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다룬 작가들의 실천은 예술이 더 이상 갤러리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힌 미적 유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슬롯적 기억을 보존하고,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며, 무너져가는 존재의 존엄성을 다시 세운다.
모닐로라 일루페주가 자작나무를 베어 전시장을 가로지르게 함으로써 환경 위기와 백인 중심적 사고에 균열을 내는 행위(존재의 선언), 파베우 마티셰프스키가 시들어가는 꽃잎으로 죽음을 명상하는 행위(존재의 유한성), 그리고 한상아가 솜과 먹으로 아이를 기르는 마음을 기록하는 행위(정동의 보살핌)는 모두 ‘기교’라는 껍데기를 벗고 ‘가슴’이라는 본질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경향은 향후 예술 비평과 교육에도 큰 변화를 예고한다. 이제 예술은 ‘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방법’과 ‘함께 존재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예술은 이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존재의 떨림이 타자의 가슴에 가 닿는 파동의 과학이자 사랑의 기술이 되고 있다.
본 연구보고서를 통해 분석한 동시대 미술의 전회는 현대 슬롯의 거대한 결핍을 메우려는 예술적 본능의 발현이다. 기교적 숙련에만 매달리던 기술자로서의 예술가는 사라지고, 자신의 존재론적 상처와 기쁨을 정동적 에너지로 변환하여 나누는 ‘치유자’이자 ‘동반자’로서의 예술가가 부상하고 있다.
유럽의 엔트로피 미학, 미국의 돌봄과 인류학적 물성, 중국의 내면적 기(氣)의 호흡, 그리고 한국의 수행적 존재론은 모두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그것은 차가운 지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여전히 따뜻한 심장이 뛰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는 일이다. 동시대 미술은 이제 기교를 버림으로써 영혼을 얻었고, 머리를 떠나 가슴에 도착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의 길을 발견했다. 이 긴 여정은 예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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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효 박사, 동서양디자인연구소
'감정과 사유의 깊이를 시각 및 언어로 풀어내는 아티스트'로서, 뉴욕 Pratt Institute 디자인 석사학위, 연세대에서 '칼융의 분석심리학에 근거한 MBTI & 건축계획' 연구로 박사학위, 홍익대에서 '메를로 퐁티의 몸현상학, 칼융의 꿈, 장자 철학의 비교연구'로 동양화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Florida 주립대, Iowa 주립대 초빙교수, 숭실대 대학원 주임교수 및 평생교육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 우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최우수상, 중앙일보주최 중앙회화대전 서양화 동상을 수상했으며, 한국미술협회 초대작가, 한국도시경관디자인학회 제2대 학회장, 서울시 및 인천시 미술작품 심의위원, 종로미술협회 교육위원장을 역임하였고, QWAF 양자파동예술가포럼 대표, 그림바카라 '꽃을 사랑한 호랑이, 유오' 저자, 아트코리아방송 칼럼 'Cross Over Art', 온라인카지노 칼럼 '내면의 양자파동, 예술로 피어나다' 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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