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디자인연구소
A Study on Universal Design and CPTED for Improving Urban Aesthetics, Focusing on the Philosophical Perspective of “Why”
동서양디자인연구소 김남효 교수
도시라는 공간은 물리적 건축물과 도로의 집합체를 넘어서, 그 속에 거주하는 인간의 시간, 기억, 그리고 존재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하나의 시적(poetic) 공간이자 삶의 기록이다. 인간은 공간 속에 던져진 존재인 동시에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주체로서, 자신이 거주하는 환경을 '구조물' 이상의 '살아 있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건축적 시선으로 도시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더 화목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응답의 과정이다.
도시는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실체인 동시에 슬롯구조적인 실체로서, 개인과 계층 간의 치열한 경쟁, 갈등, 그리고 생존을 위한 협력이 교차하는 장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 계획은 기술적인 배치를 넘어 다수를 위한 선택이자, 도시는 왜 존재해야 하며 어떻게 계획되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 존재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에 따르면, '장소(Place)'라는 개념은 인간 경험과 의식의 근본적인 성격을 결정짓는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어딘가에 항상 있어야 하는' 존재이며, 장소는 문화적, 개인적, 자연적 요소를 하나의 몰입형 전체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도시 환경에서 장소는 슬롯적 관계와 물질적 환경을 연결하는 결절점이며, 이를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장소 만들기(place-making)'는 도시 생활 방식 자체를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알도 로시(Aldo Rossi)가 강조한 '장소의 혼(Genius Loci)'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집단적 기억의 궤적이며, 시민들에게 소속감과 연속성을 제공함으로써 문화적, 역사적 풍요로움에 기여한다. 만약 도시가 이러한 철학적 성찰 없이 기능주의와 효율성에만 매몰된다면, 도시는 인간의 실존적 기반을 상실한 '대상화된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 미관을 향상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왜(Why)'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넘어, 그 디자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고양시키고, 삶의 질을 어떻게 개선하며,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확장하는지를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 정바카라의 핵심은 인간 삶의 환경을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일이며, 그 중심에 자리한 인간 가치의 인식 정도가 곧 그 도시의 수준을 결정짓는다.
김남효, 존재론적 도시경관, 동서양디자인연구소, 2026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은 나이, 성별, 신체 능력, 국적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배려의 디자인'이다. 이는 기능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 권리를 공간적으로 구현하려는 철학적 시도이다. 유니버설디자인의 핵심적인 물음은 '디자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는가'이다.
과거에는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손상으로만 보았으나, 유니버설디자인은 장애를 개인의 특성과 환경적 요인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재정의한다. 즉,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그들의 신체적 한계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을 통합하지 못하는 '생활환경의 무능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환경이 장애인에게 불친절할수록 누구나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커지며, 반대로 환경이 보편적으로 설계될 때 장애는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 중 일시적 부상, 노화, 유모차 사용 등을 통해 이동의 제한을 경험하며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니버설디자인은 특정 소수 그룹을 위한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실존적 과제이자 보편적인 삶을 지원하는 권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슬롯복지가 지향하는 '보편적 복지' 및 '공간 복지'의 개념과 맞닿아 있으며,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유니버설디자인을 구체화하는 7가지 원칙은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러한 원칙들은 제품이나 건축물에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을 넘어,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이 슬롯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소수 고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모두에게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도출하며,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평등'이라는 해답을 제시한다.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이하 셉테드)는 물리적 환경을 새롭게 디자인함으로써 범죄 발생 기회를 차단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기법이다. 셉테드는 기술적인 방범 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넘어, 공간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활용하여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공동체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셉테드의 철학적 기반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오스카 뉴먼(Oscar Newman) 등의 연구에서 시작되었으며, 인간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느끼는 '소유권'과 '안전함'이 도시의 활력을 결정짓는다는 통찰에 기반한다. 셉테드의 주요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은 물리적, 심리적 기제를 통해 범죄를 억제한다.
최근의 셉테드는 1세대의 물리적 설계를 넘어, 슬롯적 응집력과 지역 슬롯의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는 '2세대 셉테드'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주민 간의 상호작용을 늘려 낯선 사람을 식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공동체의 유대감을 통해 스스로 안전망을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다. 안전은 이제 단순한 '보너스 기능'이 아니라, 사람들이 장소를 선택하고 머무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문화적 베이스라인이 되었다.
셉테드는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주목한다. "이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직관 뒤에는 항상 구체적인 환경적 이유가 존재하며, 셉테드는 명료함(Clarity), 가시성(Visibility), 그리고 개방성을 통해 이러한 불안의 근원을 제거한다. 이는 환경이 인간의 생리적 반응을 조절하며, 신뢰가 바탕이 된 공간은 인간의 신경계를 안정시켜 공동체 신뢰를 강화한다는 근대 연구와 맥을 같이 한다.
도시 미관의 향상은 시각적인 '장식'을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그 공간에서 얼마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작업이다. 유니버설디자인과 셉테드는 각각 '평등'과 '안전'이라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현대 도시 디자인에서는 이 두 개념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통합이 갖는 철학적 의미는 도시를 기능적 장소가 아닌 '커뮤니티의 거실'로 재정의하는 데 있다. 전통적인 보안 방식이 담장을 높이고 감시 카메라를 노출하여 위압감을 주는 방식이었다면, 통합적 접근은 '소프트 보안(Soft Security)'을 지향한다. 즉, 보안 요소가 공공 예술품, 벤치, 조경 시설물 등 일상적인 풍경 속에 디자인의 일부로 녹아들게 함으로써,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뉴 에러피안 바우하우스(New European Bauhaus, NEB)' 가치는 도시 디자인이 아름다움(Aesthetics),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그리고 포용성(Inclusivity)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셉테드의 안전과 유니버설디자인의 포용성이 미학적 가치와 결합할 때, 도시 공간은 모든 시민에게 열린 접근성을 보장하면서도 범죄로부터 보호받는 회복탄력성 있는 장소가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인 '공동 창조(Co-creation)'이다. 주민들이 디자인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보안 시설을 '우리가 함께 만든 편의 시설'로 인식할 때, 공간에 대한 바카라임감과 주인 의식이 확립되며 이는 궁극적으로 가장 강력한 범죄 예방 효과인 '슬롯적 감시'로 이어진다. 디자인은 단순히 사물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를 설계하고 그들의 삶에 자부심을 심어주는 과정이다.
하남시는 도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유니버설디자인과 셉테드, 그리고 공공디자인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여 관리하는 선도적인 지자체 모델을 보여준다. 하남시는 관련 조례들을 통합하여 '하남시 공공디자인 진흥 조례'를 전부 개정하고, 유니버설디자인과 셉테드 가이드라인을 공공 사업 전반에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제도화했다.
특히 노후 주택이 밀집하여 범죄 우려가 컸던 신장동 일대에서 진행된 '범죄예방 환경디자인(셉테드) 시범사업'은 디자인을 통한 슬롯적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성과를 입증한다.
하남시의 접근 방식에서 주목할 점은 시설물 설치 전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셉테드 사업이 관 주도의 환경 개선이 아니라, 주민들이 자신의 생활 공간에 대해 느끼는 주권과 애착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또한 하남시는 공영주차장에 대해서도 하남경찰서와 협력하여 '범죄예방 우수시설 인증'을 확대하는 등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시민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정바카라적 노력은 하남시가 지향하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 '슬롯적 약자를 배려하는 명품 도시'라는 비전과 긴밀히 연결된다. 공공디자인이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어 도시 전체의 디자인 마인드를 고취할 때, 도시는 비로소 품격 있는 생활 환경을 갖추게 된다.
도시 미관의 질을 결정짓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야간 경관과 환경 색채이다. 서울시의 야간경관계획 연구에 따르면, 조명 환경(색온도)은 인간의 심리적 안정과 쾌적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낮은 조도 수준의 공간에서는 낮은 색온도의 빛을 사용할 때 사람들이 더 쾌적하게 지각하며, 이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낮은 색온도에서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환경 색채 또한 공공의 공간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자산으로서, 시각적 부담을 줄이고 주변과 조화되어야 한다. 인간은 정보의 80%를 시각을 통해 얻으므로, 강렬한 시각적 자극은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안정감 있는 색채 계획은 도시 공원과 같은 휴양 공간에서 시민들이 진정한 휴식을 얻게 하는 필수 요소이다. 야간 경관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것을 넘어, 도시의 밤을 품격 있게 만들고 시민들의 정서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디자인의 영역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매슬로우(Maslow)의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 이론은 인간이 기본적 욕구가 충족된 후 가장 완전하고 정통적인 모습이 되려는 내재적 욕구를 가짐을 보여준다. 자아실현에 도달한 개인은 자율적이며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교류한다.
도시 환경은 이러한 자아실현을 돕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확보되어야 할 것은 '존재론적 안전(Ontological Security)'이다. 존재론적 안전은 자신의 정체성의 연속성과 주변 슬롯적, 물리적 환경의 항상성에 대한 믿음이다. 주거가 불안정하거나 거리에서 위협을 느낄 때, 인간은 실용적 의식(practical consciousness)의 닻을 내리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셉테드와 유니버설디자인은 바로 이 '안전한 기지'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이 자아 형성과 자아실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자아실현 과정에서 '미적 욕구(Aesthetic needs)'의 충족은 매우 중요하다. 아름다움과의 접촉은 인간에게 내적 변화를 일으키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강화한다. 일상적인 사물이나 작업 공간을 예술적으로 가꾸려는 욕구, 즉 '일상의 미적 경험'은 자아의 정합성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동력이 된다.
매슬로우가 언급했듯이, 건강한 인간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매력을 느끼며 탐색한다. 도시가 안전하고(Safety), 포용적이며(Inclusive), 아름다울 때(Beautiful), 시민들은 두려움 없이 도시를 탐험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 도시 디자인의 '왜(Why)'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결국 '인간의 온전한 성장과 번영'에 있는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고찰한 도시 미관 향상을 위한 유니버설디자인과 셉테드는 기술적인 설계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고 그 대답을 공간에 구현하는 철학적 실천이다. 도시는 인간의 기억이 쌓이는 시적 공간이며,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디자인은 인간을 평등하게 대우하고(UD), 그들의 존재론적 안전을 보장하며(CPTED),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 자아실현을 돕는 숭고한 작업이다.
하남시의 통합 가이드라인 사례는 지자체가 어떻게 철학적 가치를 행정적 제도로 안착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니버설디자인의 배려와 셉테드의 안전이 공공디자인의 미학 속에서 하나로 융합될 때, 도시는 단'사는 곳'을 넘어 시민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된다. 특히 주민 소통과 공동 창조의 과정은 디자인이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더 화목하게 만드는 주체적인 행위임을 일깨워준다.
미래의 도시 디자인은 물리적 성장을 넘어 정서적, 철학적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 야간의 따뜻한 조명 한 줄기, 턱이 없는 도로의 매끄러움, 누군가 돌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깨끗한 골목길은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표현이다. '왜 이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모든 인간이 아름답고 안전하게 자신을 완성해 가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는 도시,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명품 도시의 모습일 것이다. 디자인은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언어이며, 그 언어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라는 가장 존귀한 존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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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디자인연구소 김남효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