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구 매장에서 만난 할머니

살다 보면 다른 가능성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무서운 게 아닐까

by글터지기

며칠 전, 냉동제품을 납품하러 한 문구 전문 매장에 방문했습니다.


제품을 검수하고 진열하는 동안 매장 입구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헤드폰을 손에 들고 직원에게 큰소리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샀는데 소리가 안 들려."


직원은 차분하게 헤드폰을 받아 확인했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계신 것은 최신 휴대전화가 아니라 오래된 MP3 플레이어였습니다.


혹시 헤드폰이 문제일까 싶어 다른 직원도 함께 확인했습니다.

여러 휴대전화와 음향 기기에 연결해 보니 헤드폰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소리가 나왔습니다.


직원들은 여러 번 같은 설명을 드렸습니다.

"헤드폰은 정상입니다. 혹시 MP3 플레이어가 고장인지 한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아니야. 헤드폰이 문제야. 여기서 샀으니까 어떻게든 들려야 할 거 아니야!."


똑같은 설명은 계속 이어졌고, 대답도 계속 같은 자리였습니다.


직원들은 난감했고,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주변 손님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일을 하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드폰을 그냥 반품해 드리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MP3 플레이어를 함께 살펴드리는 것이 맞을까.


직원으로서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텐데,

그 사실이 상대에게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설명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고쳐서 음악을 듣게 해 달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짜증나"라는 큰소리를 쉴 새 없이 쏟아내셨습니다.

보고 있는 제 자신도 덩달아 짜증이 올라오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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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이 믿고 있는 결론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설명도 차분하게 들어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제게 조언을 해도 이미 제 생각이 굳어 있을 때는

듣는 척만 했던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상대는 설명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만 옳다고 되풀이하고 있었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만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가장 강한 증거로 믿으며 사는 게 아닐까.


논리적이라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대화를 나눈다고 마음이 통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소통이 가능한 이치.


그날 매장을 나오면서도 정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헤드폰을 바꿔드리는 것이 맞았는지,

끝까지 설명하는 것이 맞았는지,

다른 방법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고,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그 할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보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틀린 답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다른 가능성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일을 마치면 내일은 휴일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오늘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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