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구분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운가

『토지』를 다시 읽으며

by글터지기

대하소설 『토지』를 네 번째 읽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시작된 독서 챌린지에 참여하며, 하루 분량씩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고 있습니다. 속도를 맞추어 간다는 것은 단순히 읽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독서는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도, 주요 장면도, 마음을 흔들었던 대사들까지 어느 정도는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읽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소설은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감정과 각자의 시선'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읽었던 나이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처음 『토지』를 읽었던 20여 년 전에는 그저 막막했습니다. 이 긴 이야기를 언제 다 읽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30대와 40대를 지나며 다시 펼쳤을 때는, 읽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50대에 다시 만난 『토지』는 전혀 다른 바카라처럼 느껴집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게 됩니다. 사건이 아니라, 그들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마음을 보게 됩니다.


서희와 길상의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봉순이는 왜 끝내 만주로 가지 않았을까.

용이와 월선은 어떻게 그런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거복과 한복은 같은 아픔을 두고 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을까.


이 질문들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였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


이 많은 인물들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과 감정을 함께 살아내는 일일 텐데, 이 소설은 그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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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토지』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한(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한'을 풀기 위해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이 때로는 옳고, 때로는 그릇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 안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쉽게 사람을 '선하다'거나 '악하다'라고 나누는 일이 얼마나 가벼운 판단인지 깨닫게 됩니다. 내가 지금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거나 '그르다'라고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선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토지를 다시 읽고 있는 지금의 저는,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추가해서, '각자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어떤 '한'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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